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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제주(濟州).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 탐라국왕 고자견(高自堅)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개성윤(開城尹) 고호(高灝)이다. 아버지는 개국원종공신으로 병마절제사를 지낸 고영수(高永壽)이며, 어머니는 개국원종공신으로 찬성사를 지낸 권현(權鉉)의 딸이다. 고려(高呂)는 1380년(우왕 6) 8월 왜구가 배 500여 척의 규모로 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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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한수재(寒水齋). 아버지는 집의(執義)를 지낸 권격(權格)이다. 형제로 우참찬(右參贊)을 지낸 권상유(權尙游)와 권상명(權尙明)이 있다. 송준길(宋俊吉)과 송시열에게 배우고, 1660년(현종 1) 진사가 되었다.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던 중, 1668년에 스승 송시열이 좌의정 허적(許積)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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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심원(深源), 호는 자재(字齋)이다. 세조 때 무신 권언(權躽)의 현손이다. 증조부는 어모장군 권팽(權伻)이며 조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어모장군 권사직(權司直),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첨지중추부사 권형, 어머니는 사인(舍人) 보성(輔誠)의 딸 진원윤씨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증(贈) 사복시정(司僕寺正)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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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시숙(始叔), 호는 천관(川觀). 광산부원군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김성(金聲)은 김장생(金長生)의 아들 김집(金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명나라가 망하자 존양대의(尊攘大義)를 지켜 벼슬에 뜻을 버리고 충주에 은거하여 학문에 힘썼으며, 일명 황명처사라 불렸다. 저서로 『유고(遺稿)』가 전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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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 은거했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경진(景進). 호는 후추(後瘳). 김관(金灌)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급(金汲)이다. 1591년(선조 24) 생원시에 급제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영남에서 의병 1,000여 명으로 거병하여 왜군에게 큰 타격을 주는 전공을 세워 참봉이 되었다. 1593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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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인. 본관은 청풍(淸風). 부원군 김대유(金大猷)의 후손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왜군을 만나서도 굴하지 않고 항거하다 피살되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금곡리에 있으며, 명묘(名墓)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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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김성진(金聲振)이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홍무적(洪茂績) 등과 인목대비의 폐비에 반대하는 복합상소를 올렸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금고형에 처해졌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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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했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운길(雲吉), 호는 백매당(百梅堂). 김세필(金世弼)의 4세손이다. 인조 대에 여덟 현의 현감을 지냈으며, 의빈부도사(儀賓府都事)로 내직에 들어가 40년 동안 극진히 부모를 봉양했다. 아버지가 별세한 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충강(忠江)의 선롱(先櫳) 아래 백학담 위에 백매당(百梅堂)을 짓고 김상헌(金尙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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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으로, 부사 김이중(金履中)의 아들이고, 순조(純祖)의 장인이다. 1785년(정조 9) 약관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8년 규장각대교로 있을 때 시·벽파(時·僻派) 싸움에 중립을 지키며 당쟁을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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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경주(慶州). 충청북도 충주시 팔봉서원(八峰書院)에 향사된 이조판서 김세필(金世弼)의 현손이다. 부인은 순흥안씨(順興安氏)이며, 현손은 김석린(金錫麟)이다. 김종현은 학행과 효행이 깊어 참봉(參奉)으로 추천되었으나 부모를 섬기기 위하여 지방관리만을 자청해서 역임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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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유거(幼擧). 고조할아버지는 충주의 팔봉서원(八峰書院)에 향사된 이조판서 김세필(金世弼)이고, 형은 김종현(金宗鉉)이다. 형 김종현(金宗鉉)과 같이 송시열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 용암마을 앞산 북쪽으로 뻗은 구릉 위에 있는데, 명묘(名墓)로 알려져 있다. 50여 평의 묘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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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형(國馨). 증조할아버지는 김자수(金子粹), 할아버지는 김근(金根), 아버지는 김영유(金永濡)이다. 중종대에 사화의 부당함을 주장한 명신 김세필(金世弼)이 아들이고 손자는 김저(金䃴)이다. 세조대에 첨정을 지냈고 1483년(성종 14) 충주판관으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관아의 노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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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자한(子漢), 호는 화은(華隱). 세종 대에 직제학을 지낸 남간(南簡)의 후손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명인 남효온(南孝溫)의 조카이다. 명종 대에 여러 관직을 거친 황삼성(黃三省)이 사위이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오랫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1540년(중종 35) 호조참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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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공청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양(景養), 호(號)는 하당(荷堂). 증조할아버지는 민각수(閔覺洙)이며, 할아버지는 민백준(閔百準)이고, 아버지는 민용현(閔龍顯)이다. 어머니 김씨(金氏)는 김세순(金世淳)의 딸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5대손이다. 민치상은 1845년(현종 11) 생원이 되었고, 이듬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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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춘천(春川). 아호는 동보(東甫), 자는 혁지(革之). 박씨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40세손이며,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일곱째 아들인 강남대군(江南大君) 박언지(朴彦智)의 11세손이다. 박항은 고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였다. 개경(開京)에 있을 때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춘천의 백성들이 격렬하게 항전하다가 전멸했을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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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자실(自實). 정숙공 박안신(朴安信)의 후손이다. 박효인은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이 나면 대변을 맛보고 그 상태를 알아 간호했고, 병세가 위독해지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병을 치료했다. 또한 박효인의 처 원씨도 효심이 지극하여 부부가 모두 주위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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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원주(原州). 효자 박효인(朴孝仁)의 처(妻)이다. 박효인은 조선 중기의 효자로 본관은 상산(常山). 자는 자실(自實)이며, 정숙공(貞肅公) 박안신(朴安信)의 후손이다. 천성이 효성스러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병환이 낮기를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했으며, 겨울에 붉은 대추를 얻는 이상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박효인과 박효인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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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선당리와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에 걸쳐 있는 산.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서 봉학산은 충주에서 서쪽으로 50리 떨어진 지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의 형태가 백학이 짝을 지어 날고 있는 백학쌍비형(白鶴雙飛形)이라서 붙어진 이름이다. 봉학산은 높이 576m이며, 서북쪽에는 부용산[644m]이 있고 동남쪽에는 가섭산[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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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와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생극면 오생리의 경계에 있는 산. 부용산은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등의 산천조에 나타나고 있는 산이다. 1898년에 편찬된 것으로 확인된 『충주군읍지』에서 부용산은 “충주 서쪽 100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망이산(望夷山)의 줄기이고 망이산 봉수는 충주에서 서쪽으로 110리 떨어져 있는데 지금은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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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대숙(大叔)·언부(彦夫), 호는 해화당(海華堂). 아버지는 밀직사를 지낸 서원(徐遠)이다. 목은 이색(李穡)의 증손으로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이축(李蓄)을 사위로 맞이하였다. 아들 서달(徐達)은 황희(黃喜) 정승의 사위이다. 1367년(공민왕 16) 태어난 서선(徐選)은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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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득지(得之), 호는 노당(盧堂) 또는 허강(虛江). 할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侯) 심연(沈淵)이며, 아버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심용(沈龍)이다. 아들이 일곱 명으로 심인봉(沈仁鳳)·심의귀(沈義龜)·심도생(沈道生)·심징(沈澄)·심온(沈溫)·심종(沈淙)·심정이다. 이 중 심온(沈溫)은 세종의 국구가 되었으며, 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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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희용(希容), 호는 효창노인(曉窓老人)·우송(友松). 종조할아버지는 심회(沈澮), 할아버지는 심원(沈湲), 아버지는 의정부사인을 지낸 심순문(沈順門)이다. 동생으로 영의정을 지낸 심연원(沈連源)과 좌의정을 지낸 심통원(沈通源)이 있다. 김현조(金顯祖)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 심건(沈鍵)을 두었고, 손자는 심희수(沈喜壽)이다. 14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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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순가(舜歌). 아버지는 심응택(沈應澤)이다. 심상훈은 1874년(고종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882년(고종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장호원에 피신중인 명성황후에게 대원군의 납치 소식을 비롯한 왕궁의 근황과 청·일 양국의 출병 사실 등 밀계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1884년(고종21)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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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노천(老泉) 또는 여용(汝用). 고려 말 고려왕조에 절의를 지킨 원천석(元天錫)의 후손이다. 원급은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과 함께 충주방어전에 참전했으며, 광해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5)에 전적(典籍)이 되었다가 충주목사(忠州牧使)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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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경임(景任), 호는 학암(鶴巖). 유관(柳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유용량(柳用良)이고, 어머니는 안동인 권련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현감이 되었다. 1574년(선조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있을 때 사간원의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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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자선(子先), 호는 취헌(翠軒).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유홍(兪泓)이며,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역임한 유대일(兪大逸)이며,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인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의 딸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유백증은 1612년(광해군4)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615년에 승문원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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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상지(常之). 학암(鶴巖) 유몽정(柳夢鼎)의 후손이다. 효우(孝友)의 근본이 하늘에 있는 것이니 부모가 하는 일이면 비록 어려운 일 일지라도 기어코 했으며, 싫어하는 일이면 비록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을 얻으니 산신령에게 기도를 드리고 대변을 맛보아 가며 4개월 동안 지성으로 간호했다.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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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거웅(巨雄). 문희공 유창(劉敞)의 후손이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오르고, 벼슬은 군기시판관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림산 제공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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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성배(聖培). 윤장(尹璋)의 현손이다. 윤재는 고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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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기주(箕疇), 자는 여구(汝九), 호는 직재(直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 이숙(李熟)이며, 어머니는 군수(郡守) 송현(宋鉉)의 딸이다. 이기홍은 이지겸(李之謙)·송준길(宋俊吉)·송시열(宋時烈) 등에게 배웠다. 과거에 응시하지 않다가 47세 때인 1687년(숙종 13) 학행으로 효릉참봉에 천거되어 임용되었다. 16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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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빙옥헌(氷玉軒). 문의공 이언충(李彦沖)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작(李作), 할아버지는 이의흡(李宜洽), 아버지는 이신효(李愼孝), 어머니는 성허의 딸이다. 형제로 이복숭(李福崇), 이녹숭(李祿崇), 이명숭(李明崇)이 있다. 처는 홍순성(洪循性)의 딸이고, 아들 이귀령(李龜齡)은 병조판서를 지냈다. 사위는 파산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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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필보(弼輔), 호는 매헌(梅軒)·봉주(鳳洲). 훈신 석번(碩藩)의 후예이다. 1576년(선조 9) 충주에서 태어난 이성국(李誠國)은 1591년(선조 24) 15세 어린 나이로 사마시에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3년 세 차례나 적진으로 들어가 왜장 사야가[沙也可, 조선이름 김충선(金忠善)]를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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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가장(假葬)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중첨(仲瞻). 충청도관찰사 이덕숭(李德崇)의 현손이다. 할아버지는 성천도호부사(成川都護府使)를 지낸 이감남(李坎男)이며, 아버지는 송화현감松禾縣監)을 지낸 이보인(李寶仁)이다. 이수림은 1592년(선조 25) 고양군수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선조가 북으로 파천(播遷)한다는 소식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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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기부(起夫), 호는 충헌(沖軒).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李璆)의 후손이다. 이시진(李時振)은 12세 때에 아버지가 병이 들자 대소변까지 맛보면서 극진히 간호했다. 어머니가 병이 나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소생시켰다. 또한 꿀을 먹고 싶다고 하는데 때마침 엄동설한이라 구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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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연안(延安). 이시걸의 자는 휴재(休哉). 이시희와 이시걸은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4세손이다. 이시희와 이시걸은 아버지의 중환에 잉어가 약이 된다고 하여 구하려고 했지만, 겨울철이라 못이 얼어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형제가 얼음 위에서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자 잉어가 솟아나왔다. 어느 땐가 약을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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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덕윤(德允), 호는 기초(沂樵). 근곡(芹谷) 이관징(李觀徵)의 후손이다. 천성이 인자하고 어버이에게 지극한 효를 다했으며, 문장으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저술로 『자손훈계서(子孫訓戒書)』 1편이 있는데 향당(鄕黨)에서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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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1623년(인조 1) 학행(學行)으로 발탁되어 6품직을 받고, 여러 군현의 수령직을 역임하면서 명성과 치적을 쌓았다. 1645년(인조 23) 사헌부장령이 되었을 때, 음관(蔭官)에게 사헌부의 직을 제수하는 것은 학식이 있거나 재행이 있어야 하는데 이유양의 학식과 재행이 모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여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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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부. 본관 풍산(豊山). 아버지는 성균관전적을 지낸 홍봉상(洪鳳祥)이며, 남편은 사헌부장령을 지낸 이유양(李有養)이고, 아들은 효자 이속(李續)이다. 이유양의 처 풍산홍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랐다. 시집을 간 뒤에도 어머니 권씨가 병을 얻게 되자 친정으로 돌아와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이고 간호하여 병을 낫게 했다. 다시 시가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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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중우(仲羽), 호는 목탄(牧灘). 유일(遺逸) 이주(李珠)의 손자이다. 이일(李佾)은 1636년(인조 14) 병조호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효행으로 이름이 알려져 진사에 추천되었다.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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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전주(全州). 태종의 차남 효령대군의 후손이다. 광흥창수(廣興倉守) 이요빈(李堯賓)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영릉참봉 이호(李浩)이며 아버지는 장령 이유양(李有養)이며 어머니는 풍산홍씨(豐山洪氏)이다. 이적과 이서는 이유양의 여섯 아들 중 각각 장남과 오남으로서 부모에게 효성을 다했다. 이적의 묘소는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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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재(大哉)이며, 호는 사계(沙溪). 아버지는 이근오(李根五)이다. 이정로는 1858년(철종 9)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가주서·초계문신(抄啓文臣)·용강현령·부교리·정언·응교를 거쳐, 1863년(고종 1) 『철종실록』낭청(郎廳)·부호군이 되었다. 1870년 성균관대사성 및 각조의 참의를 거쳐 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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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자선가. 이처인의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경택(敬宅), 호는 쌍오당(雙梧堂). 효자로 이름난 이성국(李誠國)의 후손이다. 고종 대에 의관(議官)을 지냈으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자선가로 활동하였다. 남보다 특별히 자선심이 많아서, 흉년이 들 때마다 전곡(錢穀)으로 가난한 사람을 진휼(賑恤)하고, 혼례를 못하는 자를 일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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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서(景西), 호는 난고(蘭皐). 묵재(黙齋) 이귀(李貴)의 후손이다. 충주목사를 역임하였다. 충주목사 재임시 많은 치적을 남겨 1859년(철종10) 선정비가 세워졌다고 하나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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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상향(尙鄕). 고조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이항복(李恒福)이다. 1734년(영조 10) 선공감부정이 되고, 다음 해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가 되었다. 충주목사를 비롯해 여러 곳의 목사(牧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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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수운판관·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계방(季方), 호는 금시당(今是堂). 할아버지는 판윤을 역임한 임설(任說), 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를 역임한 임연(任兗), 어머니는 정유성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에 태어난 임의백(任義伯)은 조선 예학의 태두인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630년(인조 8) 식년시 진사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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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낙향한 무신.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전이(全隬). 전신(全信)의 현손이다. 사위는 박팽년(朴彭年)이다. 전념은 태종 때 대호군(大護軍)으로 있다가 지방관으로 나갔다. 세종 때 용기위상장군(龍驥衛上將軍)·곡산부사(谷山府使) 등을 역임했다. 사위인 박팽년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멸족되자 난을 피하여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대곡리로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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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자겸(子謙)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하늘이 낸 효자라고 칭송되었다. 영조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있다가 통정대부거창도호부사 겸 진주진영병마첨절제사를 지내고 수안(遂安)·제주부(濟州府)에도 있었다. 어버이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하니 효험이 있었다. 또한 어버이가 한겨울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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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상보(相寶). 설곡(雪谷) 정보(鄭保)의 후손이다. 조선 정조(正祖) 때에 사마시(司馬)에 합격하고 용인에 있다가 충주(忠州)에 와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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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충신·효자·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건축물. 정문이란 정려(旌閭)라고도 하며,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운 건축물을 말한다. 대개 붉은 살을 두른 사방 한 칸 형식이나 문중 정려를 한 곳에 모아 여러 칸으로 만들거나 가옥의 출입구에 현판을 단 경우도 있다.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건립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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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응(聖應), 호는 송월당(松月堂). 증조할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직(鄭溭)이며, 할아버지는 청안현감 증영의정 정경연(鄭慶演)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정주(鄭澍)이고, 외할아버지는 박대항(朴大恒), 장인은 민화중(閔華重), 작은아버지는 정호(鄭澔), 동생은 정장하(鄭章河)이다. 1699년(숙종 25) 증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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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화중(和仲). 아버지는 통훈대부행사헌부감찰(通訓大夫行司憲府監察) 정경연(鄭慶演)이고, 어머니 덕수이씨(德水李氏)는 이직(李稷)의 딸이다. 형은 통덕랑(通德郞) 정주(鄭澍)와 정인(鄭潾), 정비(鄭泌), 정섭(鄭涉)과 영의정을 지낸 장암(丈巖) 정호(鄭澔), 정진(鄭津)이며, 동생은 정영(鄭泳)이다. 어려서부터 품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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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일(遺佚). 본관은 연일(延日) 또는 영일(迎日). 자는 미장(美長), 호는 주진처사(注津處士). 아버지는 행사헌부감찰(行司憲府監察) 통훈대부(通訓大夫) 정경연(鄭慶演)이고, 어머니는 덕수이씨(德水李氏) 이직(李稷)의 딸이다. 손위 형으로는 통덕랑(通德郞) 정주(鄭澍)가 있고, 손아래 아우로는 정비(鄭泌)·정섭(鄭涉), 영의정을 지낸 장암(丈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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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증조부는 증좌찬성 정직(鄭稷), 조부는 청안현감 정경연(鄭慶演), 아버지는 통덕랑 정린(鄭潾), 어머니는 양주최씨이다. 권상하의 문인으로 기품이 단아하고 은덕이 있었으며,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효우도 돈독하고 청렴결백한 가풍을 이루었다. 유학 경전과 『근사록(近思錄)』을 읽으며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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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대래(大來). 아버지는 정선교(鄭善敎)이다. 정태호는 1858년(철종 9)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60년에 부교리가 되었고, 1864년(고종 1)에 우부승지를 거쳐 이조참의·남양부사를 지냈다. 1869년 사간원대사간, 1871년 성균관대사성, 1872년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하였으며, 1874년 경기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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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휘(士輝), 호는 해동처사(海東處士), 할아버지는 풍안군(豊安君) 조흡(趙潝)이며, 아버지는 풍창군(豊昌君) 조백운(趙伯耘)이다. 동생은 승정원좌부승지 조성보(趙聖輔)와 직장 조명보(趙命輔)[후에 조공보(趙公輔)로 개명]이며, 아들은 조상건(趙尙健)이다. 아들 조상건에 대해서는『하서집(荷棲集)』속의 「조상건묘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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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정착한 무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사원(士愿). 한성좌윤(漢城左尹) 조승(趙勝)의 둘째 아들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송평동(松坪洞)에서 태어났으나 뒤에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水龍里)에 옮겨와 살았다. 웅장한 모습에 관대하고 엄격한 기량이 있었으며 글재주에 능했고 글씨도 잘 썼다.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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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유원(孺元), 아버지는 임파현령 조이순(趙頤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김상휴(金相休)의 딸 광주김씨(廣州金氏)이다. 조병로는 1849년(철종 1) 음관(蔭官)으로 출사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시작으로 1858년 보성군수가 되고 1862년 합천군수를 거쳐 공주판관·밀양부사를 역임하였다. 1865년(고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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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형제. 본관은 임천(林川). 조재의의 자는 치도(致道). 신수재(愼守齋) 조찬(趙璨)의 후손으로 조재의가 형이고 조재미가 동생이다. 조재의와 조재미 형제는 효성이 지극하여 정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했다. 매일같이 고기를 잡아 아버지 상에 올렸고, 고기를 잡다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지켜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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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유생.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인보(仁甫), 호는 함월(涵月).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이고 형제로 형 최응건(崔應健)이 있다. 1655년(효종 6) 충주에서 태어난 최응성(崔應聖)은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집 앞에 정자를 세웠는데 권상하가 정자의 운치를 칭찬하면서 함월정(涵月亭)이라고 명명했다. 스승이 지어 준 정자의 이름으로 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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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량(景亮), 호는 한천(寒泉). 아버지는 생원(生員) 허초(許礎)이고 어머니는 임하임씨(臨河林氏)이다. 숙종조 영의정을 지낸 허적의 할아버지이다. 선조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등용된 뒤 1587년(선조 20) 선공감 봉사(奉事)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왕을 따라 호종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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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할아버지는 증호조판서 허형(許蘅)이고,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행훈련원부정 허감(許瑊)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허초는 1519년(중종 14)에 을묘사화 때에 은퇴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고 충주에 살면서 학자로 활동을 하였다. 특히 1539년(중종 34) 유석이라는 자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려는 사건이 발생하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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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의 후궁. 본관은 청주(淸州). 현감 양경(楊景)의 딸이다. 세종의 총애를 받아 한남군(漢南君) 이어(李𤥽), 수춘군(壽春君) 이현(李玹), 영풍군(永豊君) 이전(李瑔) 등 3남을 낳았다. 세종의 후궁으로 들어와 혜빈(惠嬪)에 봉해졌다. 1414년(세종 23) 현덕왕후(顯德王后)가 동궁인 노산군[단종]을 낳고 9일 만에 죽자 세종은 혜빈 양씨를 택하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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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유량(幼亮), 호는 삼성와(三省窩)이다. 충주시 금가면 하담리의 하강서원(荷江書院)에서 향사하고 있는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후손이며, 증조부는 예산현감 홍주문(洪柱文), 조부는 강원도관찰사 홍만종(洪萬鍾), 아버지는 생원 홍중화(洪重華), 어머니는 심윤원(沈胤元)의 딸이다. 12세에 부모를 여의고 스스로 분발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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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인상(麟詳), 자는 원례(元禮)·군서(君瑞), 호는 모당(慕堂). 아버지는 사직 홍수(洪修)이며, 어머니는 백승수(白承秀)의 딸이다. 홍이상은 민순(閔純)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573년(선조 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9년(선조 12)에는 식년 문과에 갑과로 장원 급제하였다. 예조·호조의 좌랑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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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여(養汝). 모당 홍이상(洪履祥)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첨지중추부사 홍만최(洪萬最), 조부는 홍문관교리 홍중현(洪重鉉), 아버지는 홍인보(洪寅輔)이고, 어머니는 수원최씨이다. 홍차기(洪此奇)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홍인보는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수원최씨는 홍차기가 열 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