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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년 12월부터 산지조사를 실시했다. 1912년 황색종 산지 선정 당시의 조사에서도 충주 는 미국 의 황색종 산지인 버지니아주 와 위도가 같고 농작물에 큰 피해를 미치... 안 되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였다. 어찌되었던 목계 수납장 은 1990년대까지 충주 북부 지역의 담배 수납 업무를 맡아오다가 담배 경작이 줄어들면서 그 업무가 충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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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마을 에서 바라보면 남한강 건너 맞은편에 솔밭이 보인다. 언뜻 보아 200~400여 년 이상 됨직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충주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소풍을 오기도 하고 물놀이 장소로도 이용되던 소위 ‘ 목계 솔밭 ' 으로 알려진 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충북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412-1번지 향천마을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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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제천시 에 자리 잡고 있는 월악산 과 송계계곡 이다. 언뜻 미륵리 와 관계없을 듯 하지만 실제로 계곡은 흐르는 개울을 경계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로 나누어진다. 동은 제천시 , 서는 충주시 . 그러나 계곡을 즐기는 이는 이를 모른다. 아니 의식조차 않는다. 그저 좋은 곳에서 쉼을 원할 뿐이다. 국립공원 송계계곡 , 하늘재 와 지릅재 에서 발원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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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은 없어도 투박하고 친근한 맛이 있다. 무언지 모르게 세련된 부분이 없어서 편안하기도 하다. 그저 둔중하게 절 터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무심히 북향하고 있다. 보물 제95호 충주 미륵리 5층석탑 이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졌으니 참 오래도 견디며 서 있다. 탑의 기단 부분은 통 돌을 이용하여 안을 파내어 사용하였으며 1층 탑신은 기단 위에 간신히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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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왼쪽으로 골목길을 돌아 뒤쪽으로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면 조그마한 절인 부흥사 가 보인다. 그리고 뒤쪽으로 돌탑이 보인다. 안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충주 부흥사 방단적석유구(忠州 富興寺 方壇積石遺構) 충청북도 기념물 제136호 충북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산4-1번지 부흥사 산신각 옆에 있는 이 유구는 벽돌보다 약간 작고 납작한 돌들을 모아 쌓아올린 돌탑이다. 돌탑의 전체적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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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승할 수 있었다. 목계마을 에서는 3년을 주기로 2월 말경에서 3월 초순 사이에 귀줄다리기를 4~5일 동안 행하였다. 이때에는 인근의 각 동리뿐만 아니라 충주 , 원주 , 장호원 등지에서 농악기를 앞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충주 의 최고 축제 행사인 우륵문화제 때 부대행사로 열리는 목계 별신제와 함께 줄다리기가 행해진다. 1) 줄의 마련 예전에는 정월 농한기를 이용하여 짚으로 줄을 꼬았으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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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전 비용으로 30만원을 희사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상립 ( 충주 에서 충일약국 운영)이 30만원, 재일교포 이낙영 이 10만원을 출연해 줌으로...하였다. 2008년 3월 1일 착공하여 6월 30일 완공 예정인 중원어린이집 은 충주시 직영으로 운영 되며 117평의 면적에 보육실 6, 사무실 1, 유희실 1, 주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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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는 회신을 전해왔다. 이에 다시 거리상으로는 공판장 설립요건이 안된다고 하지만은 중간에 요도천 이 있어 실제 운반에 있어서는 애로가 매우 많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에 충주농산물검사소 에서 현지답사를 나와 실사하고 이번에는 양곡창고가 없다는 이유로 어렵다고 하였다. 이에 농기업 선도 보조사업으로 창고를 우선 먼저 세우겠다고 약속하고 결국 허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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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에게 물어보았다. “아, 예! 원래 서낭당은 길가에 있었지요. 그러다 1968년에 충주 ~ 원주 간의 국도 확장공사와 목계대교 가설 공사 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당을...사하고 농사가 풍년이 되도록 기원하였다. 그리고 이전의 부흥당 은 약 14년 전에 충주 원주 간 국도 확장 및 한강교 ( 목계교 를 말함) 건설로 인하여 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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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자 병중의 아버지를 모시고 6살의 어린 동생 이덕전(李德栓) 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난중에 돌림병으로 부모님을 함께 여의고 어린 동생을 데리고 여기저기 헤매다가 충주 의 서쪽으로 피난을 해 처음 주덕면 덕련리 덕련산 아래에 자리 잡았다. 덕련리 에는 농토가 많지 않아 제내리 앞의 진개로 옮겨 살았으나 홍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