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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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基祚 |
영어공식명칭 | Lee Kijo |
이칭/별칭 | 자선(子善),호암(浩菴),충간(忠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병호 |
출생 시기/일시 | 1595년 - 이기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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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15년 - 이기조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이기조 사간원정언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35년 - 이기조 경상도관찰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45년 - 이기조 동지 겸 정조성절사로 천나라 사행 |
활동 시기/일시 | 1650년 - 이기조 함경도관찰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53년 - 이기조 공조판서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53년 - 이기조 사망 |
출생지 | 한성 - 서울특별시 |
수학지 | 한성 - 서울특별시 |
부임|활동지 |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 |
묘소|단소 | 이기조 묘소 -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
성격 | 문관 |
성별 | 남성 |
본관 | 한산(韓山) |
대표 관직 | 경상도관찰사|예조판서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이기조(李基祚)[1595~1653]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자선(子善), 호는 호암(浩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희백(李希伯)이고, 할아버지는 이대수(李大秀)이다. 아버지는 판서 이현영(李顯英)이고, 어머니는 유사규(柳思規)[1534~1607]의 딸 진주유씨(晉州柳氏)이다. 동생은 이천부사를 지낸 이휘조(李徽祚)이다.
[활동 사항]
이기조는 1595년(선조 28) 한성[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615년(광해군 7)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들어가 박사가 되었으나, 대북파에 의하여 파직되어 아버지 이현영과 함께 수원에서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형조좌랑이 되었다가 뒤이어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는 한남도원수(漢南都元帥)의 종사관으로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뒤 지평·헌납·수찬·교리·이조좌랑·응교·좌부승지 등을 거쳐 병조참의·공주목사·호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이기조는 1635년(인조 13)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많은 치적을 쌓아 송덕비가 세워졌다. 재임 중 고려 말의 학자 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의 문집인 『가정집(稼亭集)』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645년에는 부제학으로 동지 겸 정조성절사(冬至兼正朝聖節使)로 청나라에 가서 지나친 세공미(歲貢米)의 부담을 줄이는 데 성공하였다. 효종(孝宗)이 즉위하자 호조판서에 올랐으나, 대동법 및 행전(行錢) 등의 문제로 김육(金堉)과 뜻을 달리하여 대립하였다. 1650년 김육 등의 탄핵으로 함경도관찰사로 밀려났다가 병으로 사퇴하였다. 1653년 공조판서에 임명되어 한성으로 향하던 중 김화(金化)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이기조의 묘소는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