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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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相喆 |
영어공식명칭 | Seo Sangch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 서상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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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0일 - 서상철 대구 동문시장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8일 - 서상철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 언도 |
출생지 | 덕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서상철(徐相喆)[1900~?]은 1900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재봉직공으로 일하던 1919년 3월 10일 동문시장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3·1운동이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대구에서도 계성학교·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신명여자고등보통학교·대구 성경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서문시장 만세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3월 9일에 학교와 서문시장 인근의 달성공원에서 2차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으나 시위 계획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무산되었다. 이에 서상철은 계성학교와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 학생들, 그리고 김윤덕(金潤德)·김재병(金在炳)·이덕주(李德周)·김치운(金致雲) 등과 협의하여 3월 10일 덕산정 동문시장에서 2차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서상철 등은 3월 10일 오후 4시 30분 무렵 장꾼으로 가장한 채 동문시장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1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서상철 등 시위 주동자들을 따라 열을 지어 행진하려 하자 대구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해산하였다.
이때 서상철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