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077 |
---|---|
한자 | 狎鷗亭洞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해경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압구정동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법정동이며, 고밀도 주거지역과 증권 및 금융기관이 밀집된 지역이다.
[명칭 유래]
압구정동(狎鷗亭洞)의 동명의 유래는 이곳에 조선 시대 세조 때 한명회(韓明澮)가 지은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압구(狎鷗)’는 한명회의 호(號)인데, 중국 송나라의 재상(宰相) 한기(韓琦)가 만년에 정계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지내면서 그의 서재 이름을 ‘압구정’이라고 했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고사의 의미는 ‘세상일 다 버리고 강가에서 살며 갈매기와 아주 친하게 지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 뒤 압구정은 저자도(楮子島)와 함께 철종의 딸인 영혜 옹주와 결혼하여 금릉위(錦陵慰)가 된 박영효(朴泳孝)에게 하사되었으나, 갑신정변 때 역적으로 몰려 한 때 몰수되었다가 고종 말년에 다시 찾았으며, 언제 철폐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 압구정 인근에는 뒤주니 마을, 먼오금 마을, 옥골 마을, 장자말 마을 등이 있었다. 뒤주니 마을은 압구정 밑에 있는 마을로 압구정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먼오금 마을은 압구정 구내에 있었던 마을이었다. 옥골 마을은 한강 물이 마을 앞을 흘러서 붙여진 이름이며, 옥골 마을 뒷산에서는 석기시대 돌도끼가 출토되기도 했었다. 장자말 마을은 옛날 큰 부자가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장자울이라고도 불렀으며, 과거 기와집이 많았다고 한다. 1963년 1월 1일에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서 신사동으로 편입되었으며, 1975년 10월 1일 강남구가 신설되면서 행정관할청이 신사동으로 변경되었다. 1980년 7월 1일에는 강남구 신사동에서 압구정동으로 분동되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1988년 7월 1일에는 압구정 1동과 압구정 2동으로 분동되었는데,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서 2009년 3월 1일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통합되었다.
[자연 환경]
압구정동은 북쪽으로 한강(漢江)을 접하고 있으며, 한강의 침식을 받아 대체로 낮은 기복을 이루고 있다.
[현황]
압구정동의 면적은 2015년 12월 31일 기준 2.69㎢로 강남구 전체의 6.8%에 해당하며, 2016년 3월 31일 현재 총 10,939세대에 28,626명(남 13,280명, 여 15,34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올림픽대로, 선릉로, 언주로, 도산대로와 접하고 있으며 압구정로가 관내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