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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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忠壇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 488-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신창희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10년 - 삼충단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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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89년 - 삼충단 이전 및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6월 17일 - 삼충단 가평군 향토유적 제12호 지정 |
현 소재지 | 삼충단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 488-1 |
원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
성격 | 제단 |
관련 인물 | 조병세|최익현|민영환 |
문화재 지정 번호 | 가평군 향토유적 제12호 |
[정의]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에 있는 조선 말기 순국한 조병세·최익현·민영환을 기리는 제단.
[건립 경위]
조병세(趙秉世)[1827~1905]는 경기도 가평군 출신으로 개항 이후 일제의 침략이 심화되자 모든 관직에서 은퇴한 후 가평으로 귀향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민영환(閔泳煥)[1861~1905]과 함께 을사조약의 폐지를 주장하며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민영환은 국운이 기울어졌음을 깨닫고 1905년 11월 4일 본가에서 자결하였다. 민영환이 자결하자 조병세는 같은해 12월 1일 뒤이어 자결하였다. 최익현(崔益鉉)[1833~1906]은 이항로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위정척사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1876년 일제에 의한 개항에 반대하였으며,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단행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1905년 을사조약에 항거해 다시 상소를 올렸으나 일본군에게 체포·구금되었다. 이후 74세의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마도로 수감,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삼충단은 구한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한 조병세, 최익현, 민영환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10년 건립되었다.
[위치]
삼충단은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 488-1에 위치해 있다.
[형태]
삼충단은 경내 정면의 왼쪽부터 최익현, 조병세, 민영환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으며 좌측에는 삼충단복원기념비가 있다.
[현황]
삼충단은 1989년 현 위치로 옮겨 복원되었으며, 매년 11월 25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