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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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赤木里共同生活遺蹟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산1-2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신창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9년 12월 31일 - 적목리 공동생활유적 가평군 향토유적 제1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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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산1-28 |
성격 | 생활 유적 |
문화재 지정 번호 | 가평군 향토유적 제13호 |
[정의]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공동생활유적.
[변천]
적목리 공동생활유적은 1940년대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인들이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산1-28 일대의 두 곳에 조성한 공동생활 공간이다. 가평군에서 2006년 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 : 가평군』에는 적목리 공동생활유적을 ‘적목리 신앙공동체 유적지 1’과 그곳에서 1㎞ 정도 떨어져 있는 ‘적목리 신앙공동체 유적지 2’로 구분하고 있다.
적목리 신앙공동체 유적지 1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온 신앙인들이 은신하던 곳이다. 입구에는 삼육대학교에서 세운 비석이 서있다. 적목리 신앙공동체 유적지 2는 일제 강점기 전국 각지에서 징용을 피해 모인 주민들이 목탄생산, 경춘선 철도에 소요되는 침목조달과 벌목작업 등을 하며 광복 이후까지 산기슭 곳곳에 반지하식 움집을 짓고 공동생활을 해왔던 곳이다. 이곳은 일제의 신사참배, 창씨개명, 종교 탄압과 강제 징용을 피해온 신앙인들이 은신하며 신앙심을 지켜온 곳이기도 하다.
전해지는 바로는 1944년 7월 중순경 강제 징용을 피해 도망친 젊은이들이 이곳에 숨어 있다는 밀고가 있어 일본 헌병대가 조사를 나왔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젊은이들이 산속 깊은 곳으로 숨어 화를 면했다고 전한다.
『문화유적분포지도 : 가평군』에서는 유적지를 둘로 구분하고 있지만 두 유적지의 성격은 같으며, ‘적목리 공동생활유적’으로 통칭하여 1999년 12월 31일 가평군 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적목리 공동생활유적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산1-28에 위치하고 있다. 가평읍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35km 지점인 가평천 상류 북면 적목리 75번 국도변 능선과 이곳에서 1㎞ 정도 떨어진 오른편 능선에 있다.
[현황]
적목리 공동생활유적의 중앙부에는 예배당 터가 있는데 바위와 흙, 나무로 예배당을 건립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예배당은 바닥을 1~2m 정도 판 반지하 형태로 지어졌으며 그 위에 통나무로 지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예배당 터 양 옆으로 13채 가량의 오두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두막은 통나무로 외벽을 세우고 안쪽에 흙을 발랐다. 오두막은 보통 3~4평 내외이며, 한 집에 평균 3~5명이 살았다고 한다. 적목리 공동생활유적 한켠에 성경 등을 숨겼던 바위가 있다. 이외에도 망을 보던 장대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의의와 평가]
적목리 공동생활유적은 일제의 신사참배, 창씨개명, 종교 탄압과 강제 징용을 피해온 신앙인들이 은신하며 신앙심을 지켜온 곳이다. 일제 강점기 탄압을 피해 온 이주민들의 공동생활 유적지로서 역사적 가치를 되새겨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