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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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泉女子養蠶傳習所 |
영어음역 | Gimcheon Yeoja Yangjam Jeonseupso |
영어의미역 | Gimcheon Women's Sericulture Training Institut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 19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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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 1915년 |
개칭 | 1918년 4월 |
개칭 | 1920년 4월 |
개칭 | 1923년 4월 |
최초 설립지 | 금릉면 |
주소 변경 이력 | 김천군 황금동으로 이전 |
성격 | 교육 기관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에 있었던 양잠 전습소.
[변천]
1912년 무렵 김천의 시로이유[城井惟隆]가 지방비를 보조받아 금릉면(金陵面)에 사립 양잠전습소(養蠶傳習所)를 설립하고 군내 양잠업자의 자제들이 6개월을 교육 기간으로 하여 뽕나무의 재배와 양성 및 잠종 제조법에 관해 전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 1915년에 이르러 당국이 은사수산비(恩賜授産費)로 사립 양잠전습소를 사들인 후 그 건물을 김천군 황금동으로 이전하고 은사수산김천양잠전습소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전 사립 양잠전습소(養蠶傳習所)의 사업을 그대로 이어받아 성주군과 공동으로 운영하였다.
1918년 4월에는 은사수산비의 제도 개정에 따라 김천군 잠업조합비로 경영하게 되면서 김천양잠전습소(金泉養蠶傳習所)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잠종 제조법의 전습을 없애고 교육 기간도 한 달 줄여 5개월로 단축하였다. 1920년 4월 김천군 농회가 조직되면서 잠업조합이 폐지됨에 따라 사업의 전부를 군 농회에서 운영하게 되었으며 이름도 김천군 농회 양잠전습소(金泉郡農會養蠶傳習所)로 바꾸었다.
1923년 4월에는 종래의 남자 전습생을 폐지하고 여자 전습생만 양성하기로 제도를 고치고 군 농회로부터 4,000원, 지방비로부터 600원의 보조를 받아 김천·경주·영일·청도·고령의 5개 군으로부터 여자 강습생을 모집하였다. 이에 따라 김천여자양잠전습소로 명칭을 바꾸었다. 동시에 사업 외에 설견정리법(屑繭整理法), 잠구제조법을 전습하도록 하였다. 1925년에는 2명의 전습생을 모집하였고, 1927년 9월 22일에는 13명의 수료생을 배출하였다는 신문 기사가 났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잠업은 김천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이었다. 김천군은 양잠업에 적합한 기후, 토지 등의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었다. 김천군의 뽕밭에서 재배되는 뽕나무는 재래종에 비해 개량종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김천군의 잠종은 경상북도의 알선 아래 경상북도 잠업조합에서 우량 품종을 공동 구입하여 각 면에 나누어주는 방식이었다. 또한 전임 교사가 담임 지도하여 재배 기술을 고도화하였다. 1915년부터 3개년 간에 걸쳐 각 면마다 순회양잠강화회(巡廻養蠶講話會)를 개최함과 동시에 잠구(蠶具) 품평회를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