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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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龍里 |
영어음역 | Silly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신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동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신(上新)[일명 웃곰내기]·중신(中新)[일명 아랫곰내기]의 ‘신(新)’자와 오룡(五龍)[일명 오룡골]의 ‘용(龍)’자를 따서 신룡동(新龍洞)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상신·중신·오룡이 통합되어 김천군 개령면 신룡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개령면 신룡동으로 개칭하고 1971년 상신이 신룡1동, 오룡이 신룡2동, 중신이 신룡3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신룡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개령면 신룡리가 되었다.
[현황]
신룡리는 개령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웅현고개를 넘어 약 4㎞ 떨어져 나벌들이 넓게 펼쳐진 평야에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4㎢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96세대에 494명(남자 251명, 여자 24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서부리, 서쪽으로 광덕산을 사이에 두고 어모면, 남쪽으로 황계리와 이웃하고 있다. 신룡1리·신룡2리·신룡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평야가 많아 예부터 벼농사가 발달하였고, 최근에는 포도를 많이 재배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곰내기·오룡골이 있다. 곰내기는 1500년경 나주 나씨(羅州羅氏) 나천(羅天)이라는 선비가 들어와 정착한 데 이어 경주 김씨와 경주 최씨가 입향해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집성을 이루어 세거해 오고 있다. 마을 뒷산인 광덕산 형세가 곰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 같다 하여 곰내미라고 하였다가 음이 변하여 곰내기가 되었다. 한자 표기는 웅락(熊洛)인데, ‘잇닿을 락(洛)’자를 쓴 것은 광덕산의 산세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곰내기에는 감문면으로 연결되는 지리적 특성상 일찍이 시장이 섰는데 지금도 개령서부초등학교 일대 도로변을 장터 또는 지자걸 등으로 일컫는다.
곰내기에는 앵고개[일명 앵고대], 나벌들, 장수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앵고개는 대광동 묘광과 신룡리의 경계가 되는 나지막한 고개로, 현재는 모광주유소가 들어서 있다. 옛날 감문국의 공주가 신라 총각을 기다리다 죽은 곳이라 하여 애인고개라 불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앵고개·앵고대 등으로 발음이 변하였다.
장수천은 지금은 폐동이 되어 농경지로 변한 하신에 있던 우물이다. 이 물을 마시면 힘센 장군이 된다는 신비한 샘으로, 이 마을에서 태어난 나씨 성을 가진 인물이 장수천 물을 마시고 성장해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마을 동쪽의 들을 자신의 성을 따 나벌들이라 했다고 한다. 장수천의 이적(異蹟)은 결국 이 같은 전설을 경계한 신라가 우물이 있는 하신을 폐동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리라고 추정된다.
오룡골은 곰내기에서 감문면 방면으로 가다가 덕촌리 못 미쳐 딴동백이산 앞에서 왼쪽으로 깊숙이 자리한 마을이다. 960년경(광종 11) 해주 오씨(海州吳氏)가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은 평안 강씨(平安康氏)와 김해 김씨가 주로 살고 있다. 마을 이름은 광덕산에서 뻗은 다섯 줄기가 마치 마을 저수지인 오룡지를 향해 달려드는 다섯 마리 용과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실제 광덕산에서 발원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오룡지에서 합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