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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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香川里 |
영어음역 | Hyangch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직지천 변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마을이란 뜻에서 향천동(香川洞)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충청북도 황간군 황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지천(池川)·합천(合川)·묘내·방하치가 통합되어 경상북도 김천군 대항면 향천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대항면 향천동이 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향천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황악산에서 발원한 직지천이 북쪽으로 흘러 마을을 관통한다. 방하치는 산간 오지 마을로 동쪽으로 소물산, 남쪽으로 덕대산, 서쪽으로 동구지산이 솟아 있다.
[현황]
향천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10.77㎢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445세대에 1,009명(남자 501명, 여자 50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향천1리~향천4리 네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구성면과 충청북도 영동군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903호선이 마을 앞을 지나 교통이 편리하다. 공공기관으로 대항면사무소, 지서, 보건소 등이 있고, 호텔, 여관, 식당 등 상업 시설이 밀집해 있어 연중 직지사를 찾는 관광객이 드나드는 김천의 대표적 명소이다.
자연 마을로는 지천·합천·기날[묘내]·방하치가 있다. 지천은 약 250년 전 해주 정씨 선비가 직지사를 왕래하다가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이래 마을이 형성되었다. 옛날 마을 뒤 들문골 골짜기에 못이 있어 못내라 부르고 한자로 ‘못 지(池)’자와 직지천의 ‘천(川)’자를 따서 지천이라 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직지사 상가 아래 직지천 변 일대를 일컬어 장계다리, 장가다리 등으로 부른다. 옛날 이곳에 직지천을 건너던 작은 다리가 있었고 그 다리 밑에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주막을 열어 붙인 이름이다. 옛날에는 주막 일대에 10여 기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새로 콘크리트 다리가 놓였고 마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조선 시대에는 장가다리를 기준으로 동쪽은 황간현, 서쪽은 김산군 지역이었다.
합천은 마을 앞[현재의 대항면사무소 뒤]에서 직지천과 방하천이 합류한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1930년 보통학교가 처음 설립되었다 하여 학교동이라고도 한다. 마을 앞 도로변에 넓은 바위가 있어 너른바우 또는 광암(廣岩)이라고도 하였는데 경부선철도가 마을 앞으로 나면서 석재를 충당할 요량으로 이 바위를 깨뜨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을에는 조선 시대부터 옹기를 굽는 가마인 옹기굴이 있었고 6·25전쟁 전까지도 송씨 형제가 옹기를 구워 팔면서 큰돈을 벌어 부촌으로도 이름났었다.
기날[묘내]은 김현(金鉉)이라는 선비가 약 500여 년 전에 마을을 개척하여 점사(点士)골이라는 곳에서 토기를 구워팔아 생계를 이어왓는데, 당시 마을 앞에 머루와 다래 덩쿨이 많아 기어다녔다고 하여 기날이라고 하였다. 또 지형이 고양이 모양이라 하여 묘내(猫乃)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