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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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醴泉寒天寺金銅- |
영어공식명칭 | Gilt-bronze Locks From Hancheonsa Temple |
영어음역 | Yecheon Hancheonsa Geumdong Jamulsoe Mit Soebuk |
영어의미역 | The Gilt Bronze Lock and Bell of Hancheonsa Temple in Yecheon |
이칭/별칭 | 한천사 청동 반자,한천사 금동 자물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봉숙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7월 28일 - 예천 한천사 금동 자물쇠 및 쇠북 보물 제114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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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예천 한천사 금동 자물쇠 및 쇠북 보물 재지정 |
출토|발굴 | 1989년 1월 15일 |
제작 | 고려 전기 |
현 소장처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
출토|발견지 |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증거리 184 |
성격 | 유물 |
재질 | 금동|청동 |
크기(높이, 길이, 너비) | 가장 큰 자물쇠 : 30.2㎝[길이], 12.6㎝[전체 너비]|두 번째 큰 자물쇠 : 18.2㎝[길이], 4.3㎝[전체 너비]|가장 작은 자물쇠 : 17.5㎝[길이], 4.4㎝[전체 너비]|청동 반자 : 39㎝[전체 지름], 13㎝[두께] |
소유자 | 직지사 |
관리자 | 직지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전기 금동으로 만든 자물쇠 3점과 쇠북[청동 반자] 1점.
[개설]
예천 한천사 금동 자물쇠 및 쇠북[醴泉寒天寺金銅자물쇠 및 金鼓]은 1989년 1월 15일 한천사 경내 정비 작업 중 발견되었다. 크기가 다른 금동 자물쇠 3점과 쇠북[청동 반자] 1점으로, 고려 전기에 금동으로 만든 것이다. ‘한천사 청동 반자’, ‘한천사 금동 자물쇠’라고도 한다. 1992년 7월 28일 보물 제114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1. 금동 자물쇠
가장 큰 자물쇠는 길이 30.2㎝, 전체 너비 12.6㎝이다. 몸체의 양 끝에는 덩굴무늬를 장식했으며, 좌우 끝에도 덩굴무늬 문양을 투각 기법으로 정교하게 처리하였다. 자물쇠에는 2개의 연결 고리를 부착했고, 열쇠 구멍은 왼쪽 부분에 설치하였다. 걸림쇠는 금동 비녀 형식으로, 연꽃봉우리로 장식을 마감해 놓았다.
두 번째 큰 자물쇠는 길이 18.2㎝, 전체 너비 4.3㎝이다. 몸체에는 능형곽(菱形廓)을 돌리고 안팎으로 가득 차게 물고기 알 무늬를 찍었다. 좌우에는 단순하게 덩굴무늬를 장식했으며, 한쪽 면은 부식으로 약간 파손되어 있다. 걸림쇠는 가장 큰 것과 같은 모양이다.
가장 작은 자물쇠는 길이 17.5㎝, 전체 너비 4.4㎝이다. 자물쇠의 좌우 끝에는 덩굴무늬를 투각하고, 몸체에는 물고기 알 무늬와 둥근 원 무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2. 쇠북[청동 반자]
쇠북[청동 반자]은 고려 시대 반자[절에서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 일종의 타악기]의 일반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전체 지름 39㎝, 두께 13㎝이다. 납작한 원통형으로 한쪽은 두드려 소리를 내도록 막혀 있고 반대쪽은 소리가 울리도록 뚫려 있다. 두드리는 면에는 두 개의 원을 둘렀는데, 그 사이에 8개의 꽃잎과 3개의 당초무늬로 장식하였다. 반자의 위쪽에는 3개의 고리를 달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현재 1개는 떨어져 나가고 없다.
[특징]
예천 한천사에서 출토된 금동 자물쇠 3점은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가장 큰 자물쇠의 덩굴무늬는 바깥으로 벌어진 반면, 두 번째로 큰 자물쇠는 안쪽으로 오므린 모습이어서 서로 대조적이다. 가장 작은 자물쇠는 덩굴무늬라기보다는 구름무늬로, 세 점이 각각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예천 한천사 금동 자물쇠 및 쇠북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매우 희귀한 자료이다. 그 크기나 정교한 공예 기법으로 보아 여느 자물쇠보다도 화려한 고려 시대 공예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출토된 곳이 분명하여 고려 시대 왕성했던 한천사의 사세를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