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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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毅齋 |
영어음역 | Chunguijae |
영어의미역 | Chunguijae Pavilion for Purificati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정원 |
건립 | 18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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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 |
성격 | 사우 |
양식 | 목조 건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상산 김씨 문중 |
관리자 | 상산 김씨 문중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에 있는 문충공(文忠公) 김득배(金得培)를 추모하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우.
[개설]
충의재는 문충공(文忠公) 김득배(金得培)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1867년(고종 13)에 건립한 사당이다. 김득배의 본관은 상산이고, 호는 난계(蘭溪)이며, 아버지는 판전의(判典醫) 김이록(金李祿)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을 지내고, 전객부령(典客副令)으로 강릉대군[뒤의 공민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했다. 1351년(충정왕 3)에 공민왕이 즉위하자 우부대언(右副代言)이 되었으나, 조일신(趙日新)의 무고로 파직되었다.
1359년(공민왕 8)에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가 되었고, 같은 해 6월에는 기철(奇轍)을 숙청한 공으로 2등 공신에 올랐다. 1362년에 총병관 정세운(鄭世雲)의 지휘로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최영(崔瑩)·이성계(李成桂) 등과 함께 20만의 군사를 이끌고 적 10만여 명을 죽이고 개경을 수복했다. 이때 정세운과 권력을 다투던 평장사 김용(金鏞)의 간계로 정세운과 안우가 모살되자, 그도 체포되어 상주에서 효수되었다. 그의 문하생 정몽주(鄭夢周)가 왕에게 청하여 시신을 거두고 장사지냈다. 그 뒤 1392년(공양왕 4) 누명이 벗겨졌고, 문충공(文忠公)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위치]
충의재는 김천시에서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을 연결하는 국도 3호선의 오른편에 있는 여남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충의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一’자형 기와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의 방이 있다.
[현황]
충의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 김득배를 배향하고 있으며, 상산 김씨(商山金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