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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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凰臺 |
영어공식명칭 | Bonghwangdae Pavilion |
영어음역 | Bonghwangdae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820-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정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8월 5일 - 봉황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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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봉황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개축|증축 | 1771년 |
개축|증축 | 1792년 |
이전 | 1838년 |
개축|증축 | 1896년 |
개축|증축 | 1978년 |
문화재 지정 | 1985년 8월 5일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820-1 |
성격 | 누정 |
양식 | 목조 건축 |
관련 인물 | 윤택|김항주 |
면적 | 35.64㎡ |
소유자 | 경상북도 김천시 |
관리자 | 경상북도 김천시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연화지 가운데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개설]
봉황대는 김천시 교동 연화지 가운데 위치한 정자로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서 옛 선비들이 시를 읊고 학문을 토론했던 장소이다. 연화지는 조선 전기에 농업용수 관개지로 조성된 저수지였다.
[변천]
봉황대의 건립 연대는 미상이며 창건 시 읍취헌(揖翠軒)이라 했는데 김산군수 윤택이 봉황이 나는 꿈을 꾸고 길조라 하여 봉황루로 고쳤다고 한다. 1771년(영조 47)에 군수 김항주(金恒柱)가 중수하면서 지금의 이름인 봉황대로 고쳤다. 봉황대라는 이름은 이태백(李太白)의 「봉황대에 올라」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한다. 1792년(정조 16)에는 군수 이성순(李性淳)이 개수하고 1838년(헌종 4)에 군수 이능연(李能淵)이 연화지 못 가운데로 옮겼다. 1896년에 군수 윤헌섭(尹憲燮)이 성금을 모아 중수하고, 1978년에는 김천시에서 시비 700만 원을 지원하여 개수했다.
[위치]
봉황대는 김천시 교동 820-1번지 연화지에 있다. 경부고속국도 김천인터체인지 북쪽에 있으며, 시군도 3호선이 연화지 남쪽으로 지나고 있다.
[형태]
봉황대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된 2층 누각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八’자형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며졌다.
[현황]
봉황대 앞에는 연화지라고 하는 인공 연못이 있다. 농업용수를 제공하는 시설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다가 1993년에 김천시가 2만 9372㎡를 시민 휴식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봉황대는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봉황대는 김천 시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전통 시대의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