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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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山呂氏河回宅 |
영어공식명칭 | Hahoedaek House of Seongsan Yeo |
영어음역 | Seongsan Yeossi Hahoedaek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2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주림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0년 9월 4일 - 성산여씨하회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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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성산여씨하회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훼철|철거 | 1870년 |
건립 | 18세기 초 |
훼철|철거 | 1936년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727-1 |
성격 | 가옥 |
양식 | 대문채 팔작지붕|사당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대문채]|정침 3칸|사당 3칸 |
측면 칸수 | 1칸[대문채]|2칸[정침]|1칸[사당] |
소유자 | 여만종 |
관리자 | 여만종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산여씨 문중 가옥.
[변천]
성산여씨(星山呂氏) 문중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성산여씨하회댁은 15세손 여명주(呂命周)[1681~?]에 의해 18세기 초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3년에 걸쳐 1,700여 평의 부지에 60칸 건물로 세워졌다. 하지만 1870년 농민 항쟁 때와 1936년의 수해 등으로 소실되거나 붕괴되어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그 후에 고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ㄷ자형의 정침(正寢)과 사당(祠堂), 대문채만 남아 있다.
[형태]
도로를 따라 설치한 토석 담장 사이로 난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대문채가 있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현재는 헛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벽체는 모두 탈락되었으며 지붕은 왜식(倭式) 기와를 얹었다.
정침은 대문채의 우측에 자리 잡고 있으며 ㄷ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평면은 6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상방과 안방을 두고 있고, 상방의 전면으로는 작은방, 부엌, 고방, 사랑방, 누마루가 연접되어 좌익사를 형성하고, 안방의 전면에는 안방, 작은방, 부엌, 고방, 사랑방, 누마루가 우익사를 이루고 있다.
가구는 5량가로 안채의 종도리 사이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형태는 후기적인 양식으로 보이기는 하나 흔치 않은 수법이다. 최근에 보수를 하여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정침의 우측에 있다. 건물의 배치 상태와 정침, 사당의 구조 등에서 지역적인 특징을 내포(內包)하고 있다.
[현황]
현재는 정침과 사당, 대문채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며 정침은 최근에 보수를 하여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2009년에는 대문채 등 주변 정비를 하였다. 성산여씨하회댁은 2000년 9월 4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금의 소유자인 여만종의 조부 여환옥(呂煥玉)[1896~1963]은 일제 강점기 때 김천 지역 신간회 지회장으로 선출되어 식민 지배 정책에 반대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따라서 성산여씨하회댁은 김천 지역의 대표적 독립 운동가의 생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