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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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陵西部里三層石塔 |
영어공식명칭 | Three storied Stone Pagoda of Seobu-ri, Gimcheon |
영어음역 | Gimcheon Seoburi Samcheung Seoktap |
이칭/별칭 | 금릉 서부동 삼층석탑,가마바위,금릉 서부동 폐탑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501-3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주림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8월 5일 -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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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복원 | 1997년 |
건립 | 통일 신라 시대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501-3 |
성격 | 탑 |
양식 | 석조 |
재질 | 석재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경상북도 김천시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석탑.
[개설]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 주변에서 주변에는 일휘문(日暉文) 암막새 기와 등 통일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 이르는 기와 및 자기편들이 발견되어 통일 신라 시대 사찰이 조선 중기까지는 존속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이 위치한 골짜기는 임진왜란 당시 왜병의 진로였다는 설이 있어 그 때 탑이 무너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기존에 금릉 서부동 폐탑으로 불렸고, 가마바위라고도 불린다.
[건립 경위]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의 연혁 및 조성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옥개석 등 구조물의 건축 양식이나 형태로 미루어 보아 통일 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치]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501-3번지 서부마을에서 서쪽 200m 거리의 호두산 아래 소릿길 고개 너머 골짜기 포도밭에 6개의 탑편이 있다. 여기서 북쪽으로 약 30m 지점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향토지(鄕土誌)에 나오는 감문국(甘文國)의 장부인릉이 근처에 있었다고 하는데, 능은 탑석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
[형태]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은 원래 삼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기단부, 상륜부, 3층부는 없고 탑신(塔身)의 1·2층 부재만 남아 있던 것을 1997년에 복원하였다. 탑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1층 옥개석은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갔고, 두께는 얇으며 옥개석 위에 2단의 괴임이 있다. 합각부에는 풍탁공이 뚫려 있고 낙수면의 반전은 약하다.
1·2층 옥개받침은 5단이고, 1층 옥신의 너비는 124㎝, 높이는 11㎝이며, 한쪽 변의 길이가 215㎝이다. 이 규모로 보아 웅장한 석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형태를 볼 때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삼층석탑으로 추정된다.
[현황]
김천 서부리 삼층석탑의 1·2층 탑재만 남아 있던 것을 1997년에 복원하고 철책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옥개석 등 구조물의 건축 양식이나 형태로 미루어 보아 전형적인 통일 신라 시대의 삼층석탑으로 추정되고 있어 통일 신라 시대 석탑으로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