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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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山金氏 |
영어음역 | Gwangsan Gimssi |
영어의미역 | Gwangsan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
집필자 | 송영호 |
입향 | 조선 후기[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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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
성씨 시조 | 김흥광 |
입향 시조 | 김성옥 |
[정의]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하고 김성옥(金聲玉)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광산김씨는 신라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인 김흥광을 시조로 한다. 김흥광은 신라의 왕자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담양[무진주]으로 낙향하여 살았고, 그 후손들이 무진주를 본관으로 삼았는데, 뒤에 광산으로 지명이 바뀌면서 광산김씨라 하였다. 광산김씨는 조선 전기에 대제학 9명을 배출하며 명문으로 발돋움하였다. 예학의 종주로 추앙받는 김장생(金長生)과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金萬重)이 문중에서 자랑하는 인물이다.
[입향 경위]
31세(世) 김성옥이 영조 때 사화(士禍)가 일어나자 나라가 어지러움을 한탄하며 양주에서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로 들어와 은거했다.
[현황]
후손 김용원에 의하면 김천 지역의 광산김씨 집성촌은 부항면 해인리가 유일하다고 한다. 2010년 2월 말 현재 11가구가 살고 있다. 김천에 입향한 이후 두드러진 인물인 35세 김기련(金基錬)이 통정대부에 올랐고 36세 김재두(金在斗)는 감역을 역임했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