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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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金氏 |
영어음역 | Andong Gimssi |
영어의미역 | Andong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하로 |
집필자 | 송영호 |
분관|분종 | 조선 전기[중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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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희곡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광천리 |
성씨 시조 | 김선평 |
입향 시조 | 김희발 |
[정의]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고 김희발(金希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안동김씨의 시조는 신라 말 고창[안동]의 성주로서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건충공신에 피봉된 김선평이다. 김선평은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과 함께 안동에 침입한 견훤의 대군을 병산(甁山)전투에서 대파하자 왕건은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키고 안동을 식읍으로 하사했다. 안동김씨는 조선 중종 때 14세(世) 회인현감 김기보(金箕報)의 3형제 중 김극(金克)이 승의랑공파(承議郞公派), 김태(金兌)는 증승지공파(贈承旨公派), 김원(金元)은 춘당공파(春撞公派)로 분파되었는데 김천 지역의 후손은 춘당공파에 속한다.
[입향 경위]
안동김씨 김천 입향조인 17세 김희발이 김천시 양천동 하로마을로 입향하고 헌종 때 부항면 안간리로 다시 이거해 안간파(安磵派)를 형성했다. 안동김씨 김원의 후손인 22세 김용순은 1832년(헌종 6)에 향임(鄕任)을 지내다 안동에서 아포읍 송천리로 이거해 송천파(松川派)를 형성했다.
[현황]
김천 지역의 안동김씨는 춘당공파의 후손으로, 안간파는 부항면 월곡리와 봉산면 광천리 니릿골에 집거한다. 송천파는 아포읍 송천리와 대신리에 살고 있다. 부항면 월곡리에 거주하는 후손 김상한에 의하면 2010년 2월 말 현재 봉산면 광천리에 12가구, 부항면 월곡리에 8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아포읍 대신리의 김상한에 의하면 아포읍 송천리에 2가구, 아포읍 대신리에 4가구, 아포읍 인리 미환마을에 4가구가 산다고 한다. 김천에 입향한 이후 19세 김시응(金時應)은 영조 때 명문장으로 문집을 남기며 널리 학행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