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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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原白氏 |
영어음역 | Suwon Baekssi |
영어의미역 | Suwon Bae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남리 |
집필자 | 송영호 |
입향 | 조선 시대[선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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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 조선 전기[성종] |
본관 | 경기도 수원시 |
입향지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남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운남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군자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 |
세거|집성지 |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
성씨 시조 | 백우경 |
입향 시조 | 백귀선 |
[정의]
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하고 백귀선(白貴璇)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김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수원백씨의 시조는 중국 소주(蘇州) 사람으로 당나라 때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올랐다가 간신의 모함으로 780년 신라로 망명해 고관을 지낸 백우경이다. 신라 말 중광장을 지낸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로 한다. 수원백씨는 29개 파가 있는데 김천에는 그 가운데 1세(世) 백연(白璉)으로부터 갈리는 충숙공파(忠肅公派)와 금릉부원군파(金陵府院君派)가 주로 살고 있다.
[입향 경위]
김천의 최초 입향조는 금릉부원군파의 14세인 백귀선으로 태조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키자 승선(承宣) 벼슬을 버리고 조부 백수(白粹)의 봉군지인 김천으로 낙향했다. 또한 충숙공파에서는 20세인 참봉 백은눌(白殷訥)이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피하여 거창에서 김천시 남면 운남리로 입향했다.
[현황]
후손 백정목에 의하면 김천 지역의 수원백씨 집성촌은 남면 운남리 석정마을과 어모면 군자리, 대항면 향천리, 증산면 금곡리, 교동[구읍] 등이다. 2010년 2월 말 현재 마을별 가구 수는 남면 운남리 석정마을에 50가구, 어모면 군자리에 15가구, 어모면 덕마리에 6가구, 대항면 향천리 묘내마을에 8가구, 증산면 금곡리에 15가구, 감천면 광기리에 10호 등이 살고 있다. 수원백씨가 김천에 입향한 이후 24세 백상침(白尙沈)이 호조참의, 28세 백옥진(白玉鎭)이 고종 때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냈다.
[관련 유적]
김천 지역의 수원백씨와 관련된 유적은 증산면 금곡리에 있는 백장(白莊)과 백인환(白仁煥)이 새긴 교암석(橋岩石)과 남면 운남리 석정마을에 있는 재실 숭모재(崇慕齋)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