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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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克培 |
영어음역 | Yi Geukbae |
이칭/별칭 | 겸보(謙甫),우봉(牛峰),익평(翼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남정원 |
[정의]
조선 전기 김천 지역으로 우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겸보(謙甫), 호는 우봉(牛峰). 증조할아버지는 이집(李集),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이고,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 최씨이다. 동생으로 이극감(李克堪)·이극돈(李克墩)·이극균(李克均)이 있다.
[활동 사항]
이극배(李克培)[1421~1495]는 1447년(세종 2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그해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워 좌익공신 3등에 기록되고, 이어 광릉군에 봉해졌다. 1455년 단종이 선위(禪位)할 때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에 우거하였다. 1459년(세조 5) 북방의 야인 정벌 때 신숙주(申叔舟)의 종사로 출전하였으며, 1462년(세조 8)부터 이조·예조·병조·형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다. 1479년(성종 10) 영중추부사가 되었고, 1481년(성종 12)부터 2년간 흉년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진휼사로 활약하였다.
1485(성종 16) 우의정이 되었고, 1493년 영의정에 임명되었으나 노병을 구실로 사양하였으며, 광릉부원군에 봉해졌다. 이극배는 1495년 6월 74세의 나이로 생을 마칠 때까지 49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세종을 비롯해 모두 7명의 왕을 보필하였다. 연산군은 3일간 철조(輟朝)[왕이 조회를 폐함]와 소선(素膳)[왕이 기름진 음식을 마다하고 소박한 반찬으로 수라를 드는 것]을 하고 상가를 철시(撤市)하는 등 후장(厚葬)의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산12-4번지 광주이씨 광릉부원군파 묘역에 있으며, 부인 경주 최씨와 쌍분을 이루고 있다. 묘 앞에는 묘비·상석·장명등(長明燈)이 있고 좌우로 문인석·무인석이 각 2쌍씩 서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1496년(연산군 2)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명필가로 유명한 예조판서겸예문관제학 신종호(申從濩)가 지었다. 머릿돌에 새겨진 구름무늬와 비문의 서체, 정교한 석공 기술은 예술적·기술적·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광주이씨 광릉부원군파 묘역은 1993년 4월 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3만 6184㎡로 넓으며 후손들도 이곳에 묻혀 배묘(陪墓)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익평(翼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