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19 |
---|---|
한자 | 李鉐均 |
영어음역 | Yi Seokgyun |
이칭/별칭 | 공윤(公允),소암(小庵),서주노인(西周老人)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호상 |
출생 | 1855년 1월 19일 |
---|---|
활동 | 1881년 |
활동 | 1919년 4월 |
몰년 | 1927년 12월 18일 |
추모 | 1995년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 167번지 |
묘소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파리 장서 사건 참가 |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윤(公允), 호는 소암(小庵)·서주노인(西周老人)이다. 아버지는 이준성(李浚性)이며, 어머니는 하빈 이씨(河濱 李氏) 진사 이시근(李時根)의 딸이다.
[활동 사항]
이석균(李鉐均)은 1855년 1월 19일 연안 이씨 집성촌인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 167번지[현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167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석균은 계헌(稽軒) 이경균(李璟均), 이돈영(李敦榮) 등과 함께 기호 노론의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등의 문하에서 공부했지만, 한편으론 영남 남인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다. 이석균은 곽종석·이승희·장석영 등 인근 성주·칠곡·거창 등지의 유림들과도 교유하였다. 1881년 이석균은 영남 유생들이 정부의 개화 정책에 반대하는 척사(斥邪) 상소를 올릴 때 공사원으로 선정되어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는 가운데 영남 지역의 곽종석·김창숙 등과 호서 지역의 김복한 계열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고자 했던 파리 장서 사건에 이석균은 사촌인 이명균, 육촌인 이경균 및 최학길과 함께 동참하여 서명하였다. 이 사건으로 이석균은 1919년 4월에 체포되어 고초를 당하였다.
이석균은 곽종석(郭鍾錫)과 함께 이황(李滉)의 이기설에 입각해 성리학을 재정립하고 나아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그의 사상은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실천적인 활용의 방법 등에 대해 연구했으며, 이를 실천에 옮기었다. 즉,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반계수록(磻溪隨錄)』 가운데 「전제고설(田制攷說)」을 깊이 연구하는 한편 예학(禮學)을 재정비하였다. 또한 병법(兵法)에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오위진도(五衛陣圖)를 연구하였다. 이러한 업적으로 장례는 사림장(士林葬)으로 치러졌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소암문집(小庵文集)』 10권 5책, 『주자어류고략(朱子語類攷略)』 9권, 『고략의견(考略意見)』 1책, 『주자정전유설참고(朱子井田類說參考)』 1책, 『예기집설주소고략(禮記集說註疏考略)』 1책, 『선성선사석전의(先聖先師釋奠儀)』 1책, 『가향이례고략(家鄕二禮考略)』 1책, 『퇴도매화시차운(退陶梅花詩次韻)』 1책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서북단 모성암 경내에 이석균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