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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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浚弼 |
영어음역 | Song Junpil |
이칭/별칭 | 순좌(舜佐),공산(恭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호상 |
출생 | 18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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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 1905년 |
활동 | 1907년 |
활동 | 1910년 |
활동 | 1914년 |
활동 | 1919년 |
활동 | 1940년경 |
몰년 | 1943년 |
추모 | 1968년 |
추모 | 1969년 |
추모 | 1990년 |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동 |
서원 | 경상북도 김천시 부곡동 143번지 |
성격 | 유학자|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송준필(宋浚弼)의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순좌(舜佐), 호는 공산(恭山)이다. 1869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동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송홍익으로부터 한학의 기초를 익혔고, 17세에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강회에 참석하였다. 이후 30세까지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배우면서 거창의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칠곡의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간재(艮齋) 전우(田愚)와도 교류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전국의 유생들이 반대 상소 운동을 전개하자 이에 동참하여 안동의 유림들과 참오적소(斬五賊疏)를 정부에 올렸다. 1907년 동래와 대구에서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하여 성주 지역의 향회를 돌면서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일제의 강점 전후 송준필은 고향인 고산동에서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는데, 생도들이 늘어나 모두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1914년 가을에는 5칸의 건물을 신축하고 고양서숙이라 이름 하였다. 1919년 송준필은 3·1운동을 전후해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과 면우 곽종석,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등과 유림들을 규합하여 파리평화회의와 조선총독에게 독립을 주장하는 「통고국내문(通告國內文)」을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 해 3월 4일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4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7월에 석방되었다.
송준필이 30대의 나이에 참오적소(斬五賊疎)나 국채 보상 운동, 파리 장서 사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은 개인의 학문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유학자로서의 도리를 다한 것이라 하겠다. 1933년 김천 부곡동 음지마을에 은거하였고, 1943년 원계정사[현 원계서원]을 열고 후학을 양성하던 중 1943년에 작고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에 『심통성정삼도발휘(心統性情三圖發揮)』·『대산서절요(大山書節要)』·『사물잠집설(四物箴集說)』·『육례수략(六禮修略)』·『오선생미언(五先生微言)』·『정학입문(正學入門)』·『속속자치통감목(續續資治通鑑目)』 등이 있고, 문집으로 『공산집(恭山集)』이 있다.
송준필의 성리설은 『심통성정삼도발휘』에 체계적으로 나타나는데,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대립적 입장을 모두 일면적인 설로 비판하면서 양자를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독자적인 ‘심합이기설(心合理氣說)’을 주장하였다. 이는 송대의 성리설과 퇴계(退溪) 이황(李滉) 이후의 성리설을 종합한 성리학의 일대 집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예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육례수략』을 남겼는데, 이는 유가의 전통적인 삼례에 관계된 서적을 망라하여 관혼상제의 가례와 사상견례(士相見禮)·향음주례(鄕飮酒禮)의 향례를 포함하여 육례의 의식 절차를 도설과 함께 정리하고, 각 의례의 절차에 관한 유래와 의의를 주석하였다.
또한 역사서로 『속속자치통감강목』 10권이 있다. 이의 저술 동기는 잘 밝혀져 있지 않으나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주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이은 저술임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명 태조 원년인 1368년부터 청나라가 멸망한 1911년까지 명·청대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한 것으로 그의 역사 인식을 알 수 있는 저술이다. 송준필은 단군 이래의 한국사를 기술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그 외에도 정이천(程二川)의 사잠(四箴)을 도해하여 인의 실천 심법을 여러 유학자들의 논설 속에서 정리한 『사물잠설(四勿箴說)』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후손들이 송준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8년 원계서원 건립하였다. 1969년 서원 뒤에 사당 숭덕사(崇德祠)를 지어 1971년 위패를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