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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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泉少年矯導所 |
영어음역 | Gimcheon Sonyeon Gyodoso |
영어의미역 | Gimcheon Juvenile Correctional Instituti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영남대로 1968[지좌동 58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준웅 |
설립 | 1921년 3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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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 1923년 5월 15일 |
개칭 | 1924년 4월 1일 |
개칭 | 1961년 12월 23일 |
개칭 | 2004년 12월 31일 |
개칭 | 2009년 12월 31일 |
최초 설립지 | 김천시 평화동 245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지좌동 588 |
성격 | 교정 기관 |
전화 | 054-436-2191~2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지좌동에 있는 국가 교정 기관.
[설립 목적]
김천소년교도소는 소년 수형자를 성인 수형자와 분리 수용함으로써 수용자의 과학적 분류와 합리적인 교정 교육을 도모하고, 성인 수형자와의 접촉으로 인한 소년 수형자의 악 감화를 방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김천소년교도소는 1921년 3월 25일 김천시 평화동 245번지에서 대구감옥 김천분감으로 설립되었다. 이어 1923년 5월 15일 대구형무소 김천지소로 개칭되었으며 1924년 4월 1일에는 김천소년형무소로 승격되었다.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이 강압적으로 추진되던 1944년 1월 김천소년형무소와 안동지소의 수감자 중에서 수형 성적이 좋은 사람들로 흥남 제2보국대를 조직하여 군수 사업에 동원했다가 다음 해에 이들을 다시 함흥형무소에 수감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7일과 18일 재소자 792명을 모두 석방했으며 11월 16일에는 한국인이 정식으로 관리를 맡게 되었다. 1947년 12월 1일 사법갑 제1659호 통첩으로 김천형무소로 변경되면서 성인 형무소가 되었다. 1950년 7월 31일 6·25전쟁으로 대구로 철수하여 피난했다가 9월 28일에 다시 복귀하였다. 6·25전쟁으로 형무소 건물 16동이 화재로 소실되고 3동만 남았으며 1950년 10월 12일에 대구형무소 수형자 50명을 이감시켜 복구 작업을 개시하였다.
1952년 4월 19일 법령 제360호로 20세 미만의 남자 수형자만을 수용하게 되었으며, 1955년 3월 21일에는 수용자 분류에 관한 법무부장관 훈령에 의거하여 20세 미만의 남자 수형자로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자와 누범자만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후 1961년 12월 23일에 김천소년교도소로 개칭되었으며 1981년 6월 24일에는 김천시 지좌동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2004년 12월 31일 김천교도소로 직제를 개편했으며 2009년 12월 31일에는 다시 김천소년교도소로 직제를 개편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김천소년교도소는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제1심 피의자 및 피고인과 형이 확정된 19세 미만의 소년 수형자를 수용하며 수용자 분류 심사를 통해 이송 및 가석방, 형의 종료에 의한 석방 등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수용자의 권익 신장과 교정 교화 활동으로서 직업 훈련을 통한 취업 알선과 학과 교육, 수용자 건강 진료, 종교 집회 및 교화 행사 등과 관련된 업무도 관장하고 있다.
[현황]
2010년 현재 김천소년교도소는 경상북도 김천시 지좌동 588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업무 조직은 총무과[인사 및 민원, 문서 관리, 예산결산, 금전 출납, 수용자 수용, 이송 및 석방, 전산 관리], 보안과[직원 훈련, 수용자 구금 및 계호, 상벌, 접견, 경비], 분류심사과[분류 심사, 누진 처우, 가석방 및 관용부 관리], 민원실[수용자 접견 및 영치금·품의 검사], 사회복귀과[수용자 교육·교화·생활 지도, 종교 집회 및 교화 행사, 귀휴, 석방자 보호], 복지과[국유 재산 관리, 수용자에 대한 급여], 직업훈련과[교도작업 특별 회계, 직업 훈련, 취업 알선, 위탁 및 교도 작업의 운영], 의료과[위생, 수용자 보건 의료 및 약품 제조, 건강 진료]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