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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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岩書堂 |
영어음역 | Bongamseodang |
영어의미역 | Bongam Village School |
이칭/별칭 | 도장서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봉계마을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기훈 |
건립 | 15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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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 1757년 |
개축|증축 | 1895년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봉계마을 |
성격 | 서당 |
양식 | 겹집 |
정면 칸수 | 3칸 |
소유자 | 영일 정씨 문중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봉계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서당.
[개설]
연일 정씨 선조의 선비 정신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향내 문중의 젊은이를 모아 교육하던 서당이다.
[위치]
김천시에서 김천대학으로 가는 길[대학로]을 따라 가다 김천대학을 지나자마자 삼락동이 나오고 산을 끼고 돌면 예지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에 봉곡이 있으며 그곳에 봉암서당이 있다.
[변천]
1540년(중종 35) 도장서당(道藏書堂)으로 시작했으나 약 100년 뒤 인종 중엽에 각곡(角谷) 평전(坪田)으로 옮겼다가 1757년(영조 33)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고 봉암서당이라고 했다. 1895년(고종 32)에 중수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남쪽에 낸 대문을 들어서면 1,652.9㎡[500평] 정도의 부지가 있으며, 마당 북쪽에 ‘봉암서원’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약 66.12㎡[약 20평]의 3칸 겹집 건물이 서 있다. 마루의 벽에 ‘숭정 기원 후 3정축 2월초 2일 상량(崇禎 紀元 後三丁丑二月初二日上樑)’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1757년에 각곡으로 이전했을 때의 것을 그대로 1895년 중수 때 쓴 것으로 보인다.
[현황]
2010년 현재는 서당이란 현판만 걸려 있을 뿐, 문중의 회합 장소로서 사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의 문중 교육 현장을 체험할 수 있으며, 문중 공론을 논의하던 의사소통 공간의 구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서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