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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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敎 |
영어음역 | Yugyo |
영어의미역 | Confucianism |
이칭/별칭 | 유학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이형성 |
[정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전개된 공자(孔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개설]
유교는 공자 및 맹자(孟子), 증자(曾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삼국 시대]
삼국 시대 고창 지역의 유교에 대해서는 올바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다만 백제가 유교를 바탕으로 정치와 문화를 구축하고 의례를 거행했다는 측면에서 고창 지역 유교 문화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백제는 근초고왕 때 아직기(阿直岐)와 왕인(王仁)이 왜에 파견되어 『천자문(千字文)』과 『논어(論語)』를 전수한 바 있고, 고흥(高興)이 『서기(書記)』를 편찬함으로써 유학에 대한 교육이 확대되었다. 의자왕의 효(孝), 계백(階伯)이나 성충(成忠)의 충(忠), 도미(都彌)의 절(節) 등은 유교 정신을 기초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백제의 남부 지방이었던 고창 지역의 유교 문화의 이해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려 시대]
고려는 치국(治國)의 이념을 유교에서 모색했으니, 사인(士人)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진흥한 유교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고창 지역의 유교는 유학의 근본정신인 충(忠)·신(信)·청백리 정신에서 엿볼 수 있다. 고려 현종 때 활약한 대신 장연우(張延佑)[?~1015]의 충, 정종과 문종 때 활약한 최충(崔沖)[984~1068]의 제자 오학린(吳學麟)[1009~?]의 신, 충렬왕 때의 윤해(尹諧)[1231~1307]의 청백리, 윤구생(尹龜生)의 효 정신 등이 그러한 예이다. 특히 무송유씨 유녹숭(庾祿崇)[?~1114]·유필(庾弼)[?~1155]·유응규(庾應圭)[1131~1175]의 충직에는 유학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정신은 고려 후기 국가 발전에 대한 헌신이자 지역의 교화였으니, 유학적 큰 공헌이라 할 수 있다.
고려 후기에 활약한 윤택(尹澤)[1289~1370]은 윤선좌(尹宣佐)[1265~1343]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서(經書)에 두로 통하였는데, 특히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통달했다. 그는 왕에게 『서경(書經)』과 『대학연의(大學衍義)』, 「최승로상서문(崔承老上書文)」 등을 강설(講說)하였다. 윤소종(尹紹宗)[1345~1393]은 이색(李穡)[1328~1396]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경사(經史)에 밝았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경전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여 시사(時事)에 대한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다. 윤택과 윤소종의 활약은 왕으로 하여금 유교적 정치 이념에 힘쓰고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공민왕 때 세워진 학당사(學堂祠)는 고창 지방민의 유교적 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 들어와 고창 지역 유교는 고려 때 세워진 학당사가 그대로 존속하고 1406년(태종 6)에 흥덕향교(興德鄕校), 1420년(세종 2년)에 무장향교(茂長鄕校)가 창건된 데 이어 학당사가 1512년(중종 7) 고창향교(高敞鄕校)로 개칭되며 유교적 기능, 즉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 교육을 실시하였다. 현 고창 지역 일대에 향교가 세 곳이나 있었다는 것은 그 만큼 유교가 번창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특히 고창향교에는 80종 464책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는데, 『향안(鄕案)』과 『청금록(靑衿錄)』 등은 지방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이 지역 출신 학자들의 문집도 다량으로 보관되어 있다.
고창 지역에는 변성온(卞成溫)[1540~1614], 변성진(卞成桭)[1549~1623], 오희길(吳希吉)[1556~1625], 고여흥(高汝興)[1617~1678], 황윤석(黃胤錫)[1729~1791], 강인회(姜寅會)[1807~1880], 김기형(金基衡)[1841~1917], 손기락(孫基洛)[1858~1922], 조덕승(曺悳承)[873~1960], 강희진(康熙鎭)[1878~1942], 정대수(丁大秀)[1882~1959], 유영선(柳永善)[1893~1970] 등 많은 유학자들이 있었다. 또한 유한량(劉漢良), 박의(朴義), 오장환(吳壯煥), 정시해(鄭時海), 고석진(高石鎭) 등의 순절사 및 의열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전기를 지나면서 고창 지역에는 서원과 사우가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사우는 창효사(彰孝祠)[1494년]·도암서원(道巖書院)[1613년] 외 34개가 있고, 서원은 동산서원(東山書院)[1718년]·운곡서원(雲谷書院)[1797년]·월암서원(月巖書院)[1946년]·만화서원(萬化書院)[1949년]·화강서원(華岡書院)[1955년]·화동서원(華東書院)[1958년]·니산서원(尼山書院)[1977년]·계산서원(溪山書院)[1982년] 등이 있다. 이외에도 유교의 상징인 충의와 효행을 고취시키는 정사(精舍), 단(壇), 부조묘(不祧廟) 등도 있다. 현재도 고창 지역에서는 고창향교, 흥덕향교, 무장향교에 소속된 각 유도회 등의 단체를 통해 유교의 충효 교육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