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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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弓山里 |
영어음역 | Gungsan-ri |
이칭/별칭 | 활뫼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궁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상휘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궁산리가 할뫼[275.5m] 밑에 있는 마을이므로 활뫼 또는 궁산(弓山)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옛날에 채씨가 마을을 지나다가 산세와 지형이 좋아 정착한 후, 영성정씨(靈城丁氏), 금성나씨(錦城羅氏), 전주이씨(全州李氏), 여흥민씨(驪興閔氏), 평산신씨(平山申氏) 등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궁산과 두마(斗馬) 일부를 병합하여 궁산리라 하고 심원면에 편입하였다.
[자연환경]
할뫼 동쪽에 개매기[狗項]로 넘어가는 진등재가 있고, 주산리 대곡으로 넘어가는 죽맷재가 있다. 서남쪽에는 궁산저수지가 있다.
[현황]
궁산리는 심원면의 남부에 있다. 2010년 3월 기준 면적은 2.67㎢로 밭 0.15㎢, 논 0.82㎢이며, 2014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총 39세대에 66명[남 33명, 여 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로 내궁과 외궁이 있다. 그 외 활뫼, 개매기 등의 마을이 있다. 개매기는 궁산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개의 목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활뫼 북쪽에 궁산교(弓山橋)가 있다.
1930년대 삼양사의 간척 사업으로 마을이 저수지에 잠기게 되자 마을 주민 민씨(閔氏)가 삼양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여 주민 일부는 타지로 떠나고 일부는 지금의 마을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저수지 제방 공사는 1937년 3월 착공하였다. 궁산리가 배출한 인물로 나주목사를 지낸 민영채(閔泳彩)가 있다. 주요 성씨는 금성나씨, 전주이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