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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룡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35
한자 盤龍院
영어음역 Ballyong-won
영어의미역 Ballyong-won Lodging Facilit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반룡리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시대
시행처 국가

[정의]

고려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반룡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때때로 일반 행인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역과 함께 설치된 시설이어서 흔히 역원제도라고 일컫는다.

수령이 부근의 승려, 향리, 관리 가운데에서 원주(院主)를 임명하고 잡역을 면제해 주는 대신 원의 운영을 책임지게 하였으나, 수령이 원주를 제대로 파견하지 못하게 되면서 원우(院宇)가 낡거나 파괴되자 관리들의 이용이 줄어들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주막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제정경위 및 목적]

공적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에게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고자 반룡원(盤龍院)을 설치하였다.

[내용]

반룡원고창현에 속해 있던 원의 하나이다.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창현 서쪽 2리에 있으며, 반등·취령·구왕·화시 등 네 산 사이에 성이 높이 솟아 있는데 사면이 험하다. 예전 성을 쌓을 때에 용이 솟아나온 일이 있어서 그 구멍이 아직도 있으며 성 아래에 반룡원이 있다[龍穴半登鷲嶺九王火矢四山之間有城高峙四面危險昔築城之時有龍聳出其穴尙在城下有盤龍院].”라 하였고, 『여지도서』에 용혈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설명을 하면서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였다.

[현황]

반룡원이 현 서쪽 2리에 있었다는 기록을 따른다면 반룡원은 지금의 고창읍 읍내리, 용혈을 설명한 기록을 따른다면 화시봉에 있던 성 아래가 된다. 한편, 신림면반룡리가 있는데 본래 흥덕현 이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마을에 반룡원이 있었으므로 반룡이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 상반룡·하반룡 등이 있다. 반룡리는 화시산[화시봉] 동쪽에 있으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역원을 치소에서 2리 떨어진 곳에 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반룡원은 현의 서쪽 2리에 있었다는 기록보다 용혈 관련 기록이 타당성이 있다. 또한 신림면에 반룡이라는 지명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으므로 반룡원신림면 반룡리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반룡리는 예전 흥덕현 이남면에 속했던 지역이므로 반룡원고창현 관련 기록에 들어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사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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