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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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弓山處 |
영어음역 | Gungsan-ch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궁산리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고려 시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개설]
처(處)는 고려 시대에 있었던 일종의 장원(莊園)으로 신라 녹읍제(祿邑制)의 유제(遺制)로 여겨지며, 비슷한 것으로 장(莊)이 있었다. 처는 단순한 면적 단위의 장원이 아니라 단수 또는 복수의 촌락으로 구성된 지역적 행정구역의 하나로서 군현(郡縣)의 하부 단위였다. 그러므로 처는 현으로 승격되기도 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 군현에 흡수될 수 있었다.
처의 형성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신라말 고려초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에는 양계(兩界)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 360개의 장과 처가 있었다고 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여러 지리지에서 확인되는 곳은 30여 개뿐으로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집중 분포하였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무장현 고적조에 "궁산처는 현에서 북쪽으로 25리 떨어져 있다[弓山處在縣北二十五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내용]
궁산처는 고려 시대에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존재했을 터이지만 조선 초기에 무장현에 편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관련 기록에 따르면 현의 북쪽 25리에 있으며, 차(茶)를 생산하던 곳이었다.
[현황]
궁산처가 있던 심원면 궁산리는 조선 말기 무장군 심원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할뫼[275.5m] 아래에 있는 마을이므로 활뫼·활매 또는 궁산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궁산리라 하였다. 마을과 이름이 같은 산인 활뫼는 심원면 궁산리·주산리·도천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세가 활 모양이어서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