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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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山所 |
영어음역 | Yongsan-so |
영어의미역 | Yongsan-so Local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고려 시대 고창군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개설]
소(所)는 고려 시대 있었던 말단 행정구역의 하나로 향(鄕)·부곡(部曲)·장(莊)·처(處)와 함께 부곡제(部曲制)를 구성한다. 주로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광물이나 수공품의 생산을 맡아 하던 곳이다.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 은소(銀所), 동소(銅所), 철소(鐵所), 사소(絲所), 주소(紬所), 지소(紙所), 와소(瓦所), 탄소(炭所), 염소(鹽所), 묵소(墨所), 곽소(藿所), 자기소(瓷器所), 어량소(魚梁所), 강소(薑所), 다소(茶所), 밀소(蜜所) 따위가 있었다.
발생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향·부곡이 삼국 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과 달리 고려 시대에 들어와 공물(貢物)의 확보를 위해 정책적으로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는 일반 군현과 구별되는 특수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군현이 관할하는 일반 촌락 가운데 자연적·사회적 입지 조건에 따라 특정 물품의 생산에 유리한 촌락을 국가에서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부터 해체되기 시작하여 조선 전기에는 전국적으로 군현제가 정비되면서 향·부곡과 함께 군현으로 승격하거나, 직촌(直村)이 되면서 없어졌다.
[내용]
용산소는 무장현에 소속된 소의 하나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무장현에 용산과 재역(梓亦)이라는 다소(茶所)가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관련 기록은 찾을 수 없어 현재의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다. 문헌 기록상 용산이라는 지명은 『무장현읍지(茂長縣邑誌)』에 기록된 서동음치면(西冬音峙面) 용산리(龍山里)가 있는데 지금의 공음면 칠암리 용생이마을[일명 용산]이다. 또 다른 지역으로는 대산면 대장리 용산마을이 있다.
[현황]
칠암리는 무장현 동음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망모기 밑이 되므로 망목촌이라 하다가 마을 뒷산에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있다 하여 칠암으로 고쳐 불렀다. 1914년 용산리·연동리·갑촌리·원동리·장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용생이마을은 원칠암마을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이 용처럼 생겨 붙인 이름이다.
대산면은 무장현에 속했던 지역으로 원래는 장자산(莊子山)이 있으므로 장자산동면이라 하였다. 대장리는 무장현 장자산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장동리·용해리·연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용산마을은 시목 동쪽 용의 형상을 한 용산 밑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공음면 칠암리와 대산면 대장리 두 곳 모두 예전 무장현에 속한 지역이어서 현재로서는 어느 곳이 용산소였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