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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역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44
한자 靑松驛
영어음역 Cheongson-gyeok
영어의미역 Cheongsong-yeok Stat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향산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시대
폐지연도/일시 조선시대
시행처 국가

[정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고창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개설]

역(驛)은 교통 통신 기관으로 우역(郵驛)·역관(驛館)·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으며, 군사·외교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중앙 집권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육상에는 육참(陸站)을 설치하여 주로 역참이라 하였고, 해상이나 강변에는 수참(水站)을 설치하여 수로와 육로를 연결하였으며, 때로는 통행인을 검문하는 변방의 요새 구실도 하였다.

[제정경위 및 목적]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청송역을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무장현 역원조에 "청송역은 현에서 동쪽으로 25리에 있다[靑松驛在縣東二十五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여지도서(輿地圖書)』 , 『고창현읍지(高敞縣邑誌)』 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내용]

청송역은 조선 시대 무장현에 소속되었던 역의 하나로 현의 동쪽 25리에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전라도 지역에는 전라좌도에 벽사도(碧沙道)·오수도(獒樹道)·경양도(景陽道)·제원도(濟原道)가, 전라우도에 청암도(靑巖道)·삼례도(三禮道)가 있었다. 이 중 전라우도에 속한 청암도에 단암(丹巖), 영신(永申), 선암(仙巖), 신안(申安), 녹사(綠沙), 가리(加里), 영보(永保), 경신(景申), 광리(光利), 조림(鳥林)과 함께 청송역이 있었다. 『고창현읍지』에 따르면 청송역에는 3등마 8필, 마호(馬戶) 3명, 대장(代長) 1명, 문서직(文書直) 1명, 마종(馬從) 6명, 급주(急走) 2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현황]

청송역이 있던 고창군 성송면 향산리는 무장현 성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송면에 편입하였다. 향산리 청송마을에 청송역 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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