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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56
한자 興德鎭
영어음역 Heungdeok-jin
영어의미역 Heungdeok-ji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주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조선 전기
시행연도/일시 1397년연표보기
폐지연도/일시 1417년연표보기
시행처 국가

[정의]

조선 전기 고창 지역의 군사 조직.

[개설]

조선 전기에는 고려 이래의 군사 지휘관이라 할 수 있는 도평의사사, 중추원, 중방, 삼군도총제부 등 잡다한 기관이 존재하여 군사지휘권의 소재가 모호하였다. 이때에는 각 도마다 전담 도절제사(都節制使)가 있어 군사 행정 및 전투 수행을 책임졌는데, 각 도 중심의 군사 체제보다 작지만 훨씬 효과적인 군사 체제의 도입이 필요하였다.

이에 1393년(태조 2) 9월 중방을 폐지하고 삼군도총제부를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로 고쳐 왕권 강화에 큰 역할을 하게 하였다. 1397년(태조 6)에는 군사 단위로서의 도를 폐지하고 각 도에 진(鎭)을 설치하여 도절제사 대신 첨절제사를 두고 부근 군현의 병마를 통괄하는 동시에 도관찰사의 감독을 받게 하였다.

이에 따라 전라도를 비롯하여 충청도, 경상도, 풍해도, 강원도에 2개에서 4개의 진을 설치하여 모두 15개 진이 설치되었다. 이때 전라도에 최초로 설치된 진은 옥구진, 목포진, 흥덕진, 조양진이었다. 진의 설치는 국방군으로서의 지방군이 확고한 지위를 갖게 되어 조선시대 지방군인 진군(鎭軍)의 성립을 가져왔고, 특히 남방 지역의 방어 기지 구실을 하였다.

[변천]

1397년 흥덕진이 설치됨에 따라 병마사가 파견되어 군사적인 임무를 수행하였고, 1417년(태종 17) 흥덕진을 폐지하고 부안에 이속시켜 부안진으로 개칭하였다. 세종 대에는 연해와 국경 등 주요 지역에 영(營)과 진을 두었는데 이는 내지(內地) 주현의 방어가 소홀한 난점을 가지고 있었다.

1457년(세조 3)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주요한 지역을 거진(巨鎭)으로 하고 나머지 주변 지역의 여러 진을 그에 속하도록 하는 진관 체제(鎭管體制)로 개편하였다. 이로써 행정구역상의 도와 혼돈하기 쉬운 도의 조직을 요새지나 군사 기지처럼 거점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진으로 표시하였고, 거진을 중심으로 여러 진이 효과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1466년(세조 12)에는 진관 체제가 완전히 법제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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