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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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丹書鐵券 |
영어음역 | Danseocheolgwon |
영어의미역 | Annual Stipend Certificate of Meritorious Subject for Gimchuk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 21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주명준 |
성격 | 공신녹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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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 | 김축 |
저술연도/일시 | 1605년 |
간행연도/일시 | 1605년 |
권수 | 2권 |
소장처 | 어사각 |
소장처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 214 |
[정의]
1605년에 고창 출신의 김축(金軸) 일문에게 내린 공신녹권.
[편찬/발간 경위]
『단서철권』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공신들에게 수여하던 상훈 문서와 쇠로 만든 표지, 즉 공신녹권을 일컫는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그 해 5월 호남 사람들이 크게 기대를 걸었던 전라도순찰사 이광(李洸)이 이끈 근왕병이 선조가 서울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회군하여 공주로 돌아오자 김축은 무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김축이 왜군에 항전하는 의기를 높이 세우자 아우 김헌(金軒)·김윤(金輪), 종제인 김사모(金嗣牟), 삼종제인 김대인(金大仁)과 아들 김남·김기경·김우남 3형제, 손자인 김흥립·김영립, 동생 김헌의 아들인 김두남(金斗南)·김지남(金志南), 김두남의 아들인 김덕립·김효립(金孝立), 김사모의 아들 김억명(金億命)·김억룡(金億龍)·김억호(金億虎) 3형제, 근친인 김치모(金致慕)·김세근(金世斤)·김나복(金羅福)·김인복(金仁福)·김신문(金申文)·김극구·김응추·김국서 등의 일족과 가동 및 마을 사람 수백 명이 그를 따라 전쟁에 참여하였다.
이후 김축은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들, 조카와 함께 이치 전투·배티 전투·행주 싸움에 참전하였고,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황진(黃進)과 함께 진주 혈전에 참전하여 순국하였다. 김축의 일족들은 계속하여 각지의 전투에 참전하여 25명이 모두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또한 김축의 처 반남박씨(潘南朴氏), 김헌의 처 함안조씨(咸安趙氏), 김기남의 처 금성나씨(錦城羅氏), 김두남의 처 영암박씨(靈岩朴氏), 김세근의 처 청주한씨(淸州韓氏) 등 5명이 남편을 따라 다투어서 순절하니, 이들 25명의 충열과 5명의 절부를 30의열이라 칭하였다. 1605년(선조 38) 4월 16일 조정에서 이들을 『선무원종공신록(宣武原從功臣錄)』에 서훈하여 『단서철권(丹書鐵券)』을 내리고 이를 봉안할 수 있는 어사각을 세우도록 하였다.
[서지적 상황]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교촌리 214번지에 있는 어사각에 보관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이 벌어진 7년 동안 전라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항전으로 꼽히는 것은 김축을 정점으로 한 김해김씨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의 직계 근친 25의사의 투쟁이다. 어사각에 봉안되어 있는 『단서철권』은 지금도 무장 유생들의 충성심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