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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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永寬 |
영어음역 | Bak Yeonggw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 284[동서대로 585-1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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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 284[동서대로 585-11] |
성별 | 남 |
생년 | 1899년 7월 7일 |
몰년 | 1975년 10월 19일 |
[정의]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박영관은 1899년 7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1926년 음력 5월 28일 오석완(吳錫完)으로부터 권총 및 탄환을 전해 받았다. 1928년 음력 4월경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마련된 이리동척회사(裡里東拓會社) 습격 계획에 참가하였다. 이 계획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의 조인현(趙仁賢)[일명 오해룡(吳海龍)]의 지휘로 추진되었는데, 조인현은 대한통의부 독립 단원으로 1925년 군자금 모집의 사명을 띠고 권총과 격문 등을 휴대하고 동지 이중산(李中山)과 함께 군산 지역으로 들어왔다. 이후 조인현은 장재여관을 경영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고,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지폐를 위조하였으며, 폭탄을 만들어 일제 기관 및 착취 기관인 이리동척회사 지점 등을 습격할 준비를 진행하였다.
박영관은 1925년 조인현과 만나 이 계획에 적극 찬동하여 함께 거사 계획을 착착 추진하였다. 그러나 전라남도의 부호 강모(姜某)에게 군자금 지원을 요청하던 중 일본 경찰에게 탐지되어 조인현 등 13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박영관은 1930년 3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는데, 이후 옥고의 여독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출옥한 뒤 산간벽지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한다. 1975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두월리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