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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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容鶴 |
영어음역 | Won Yongha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신송리 41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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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신송리 412 |
성별 | 남 |
생년 | 1918년 8월 29일 |
몰년 | 1976년 7월 31일 |
[정의]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원용학은 1918년 8월 2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신송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도쿄[東京]의 릿쿄대학[立敎大學] 예과(豫科)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1년 6월경 원용학은 주오대학[中央大学] 학생 배종윤(裴宗潤), 요코하마[横濱]전문학교(專門學校) 학생 강상호(姜相湖) 등과 자주 만나서 창씨제도와 조선어 폐지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이후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항일 민족의식 고양 및 동지 규합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재판 결과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으나 옥중에서 11개월 14일간의 옥고를 치렀다.
원용학은 그 뒤에도 일제의 조선 통치는 조선을 무시한 비인도적 식민지 정책의 발로이므로, 장차 미일전쟁이 벌어져 동경이 혼란에 빠지게 될 때 일제히 봉기할 준비를 갖출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통치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항할 것 등을 수시로 모여 논의하였다. 그러다가 1941년 10월 14일 배종윤·강상호 등의 동지들과 함께 또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곤욕을 치르다 1942년 9월 28일 풀려났다.
[상훈과 추모]
199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