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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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鉉中 |
영어음역 | Sin Hyeonjung |
이칭/별칭 | 경일(景一),율봉(栗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훈 |
성격 | 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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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
성별 | 남 |
생년 | 1877년 |
몰년 | 1942년 |
본관 | 평산 |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1877년(고종 14)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서 태어났다. 관수당(觀水堂) 신담(申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오정(梧汀) 신도균(申燾均)이다.
[활동사항]
신현중(申鉉中)은 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우다가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전과 사서(四書),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을 읽고 정주(程朱)의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서학이 나라를 시끄럽게 한다고 성토하였고,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을 때 민영환(閔泳煥)이 자결하자 제문을 지어 제사지냈다. 파리 만국 평화 회의에 보내는 파리장서(巴里長書) 사건에 가담했다가 일본 경찰에게 잡혀 가 구금되기도 하였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향리에 은거하여 김재종·조석일·이규찬·김상흡·유춘석 등 지역의 석학들과 교유하고 시문을 지으면서 만년을 보냈다. 태극 음양으로부터 심통성정(心統性情), 인심도심(人心道心), 사단칠정(四端七情) 등의 성리학과 『중용(中庸)』·『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 등 폭넓은 학문 영역과 제례 등에서 박학다식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가장(家狀)이나 행장(行狀), 묘비명 등이 없어 가계나 인품, 행동거지 등을 알 수가 없다. 1942년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율봉집(栗峯集)』 9권 5책이 있다.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자 이를 토벌하는 군사를 일으켜야 한다는 「토동비의려(討東匪義旅)」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고, 고종이 죽자 「동지에게 고하는 글[告同志文]」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