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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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川祠 |
영어음역 | Cheongcheonsa |
영어의미역 | Cheongcheon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 718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주명준 |
성격 |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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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943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3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 718 |
소유자 | 달성배씨 종중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 있는 배을서(裵乙瑞), 배세조(裵世祚)를 배향한 일제 강점기 사우.
[개설]
청정공(淸靖公) 배을서(裵乙瑞)를 주벽으로, 송간(松澗) 배세조(裵世祚)를 배향했다. 배을서는 총명하고 재기가 비범하여 길재(吉再)에게서 수학하였고, 그의 사위가 되었다. 또한 정몽주와 이색 문하에서 수학하여 척불흥학(斥佛興學)을 사명으로 삼았고, 부모 장례를 마치고는 3년여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공민왕 대에 예부상서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불출하였으며, 태종이 세자 사부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시호는 청정(淸靖)이다. 1751년(영조 27)에 유수 서종급(徐宗伋)의 주청으로 두문제현(杜門諸賢) 을 표창하여 비를 세우고 치제를 명했다.
배세조는 배을서의 9세손으로 1659년(효종 10) 나주에서 출생하였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장 도덕으로 이름을 날렸다. 숙종 때에 동몽교관에 제수되었으나, 송시열이 화를 입자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고, 신임사화 때 노론 4대신의 신원을 상소한 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동리사(東籬詞)를 지어 절개를 지켰다. 송간(松澗)에 정사를 지어 후진을 양성하였다.
[위치]
고창군 공음면소재지에서 무장 방면으로 가는 지방도 796호선을 따라가다가 계동제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용수리 청천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 청천사가 있다.
[변천]
무장향교의 전교와 유도회장을 지낸 배성수가 입향조인 배세조와 배을서를 모시기 위하여 유림과 힘을 합쳐 1943년에 배씨의 세거지에 청천사를 건립하였다.
[형태]
청천사는 외삼문, 강학당, 내삼문, 청천사, 관리사로 구성되어 있다. 외삼문과 강학당, 내삼문, 청천사가 일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학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이다. 청천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앞면 1칸은 전퇴개방형이다. 청천사는 콘크리트로 기단을 만들고 복사발형 주초를 놓았으며,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의 윗부분은 창방과 결구하였다. 겹처마이며 맞배지붕이다. 측면에 풍판을 달았다.
[현황]
건물의 연대가 오래지 않아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다. 매년 음력 2월 18일에 제사를 지낸다. 지금도 달성배씨들이 청천사를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배세조는 나주에서 출생하였으나 무장현[현 무장면]으로 이사하여 달성배씨의 무장 입향조가 되었다. 청천사는 고창 지역 사우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