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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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秉壽 |
영어음역 | O Byeongsu |
이칭/별칭 | 극경(極卿),수산(壽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성산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동수 |
성격 | 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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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성산리 죽산마을 |
성별 | 남 |
생년 | 1883년 |
본관 | 함양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개설]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자는 극경(極卿), 호는 수산(壽山)이다. 사호(沙湖) 오익창(吳益昌)의 후손이며, 오흥원(吳興源)의 아들이다. 1883년(고종 20년) 아산면 성산리 죽산(竹山)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성품이 염결(廉潔)하여 화려한 것을 싫어하고 권세를 멀리했으며, 학문은 경학(經學)을 위주로 문장은 여기(餘技)[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취미로 하는 재주나 일]로 여겼다. 만년에 마을 남쪽 정벽(靜僻)한 곳에 재실을 지어 야귀재(夜歸齋)라 현판을 하고는 밤낮으로 강학(講學)을 하고 저술을 하였다.
[학문과 사상]
일찍이 종숙 호산(壺山) 오도원(吳道源)에게서 배우고 스스로 독학(篤學)하여 경전(經傳)의 깊은 뜻을 깨쳤다. 특히 심성이기(心性理氣)와 태극음양오행(太極陰陽五行)의 논설에 이르러서는 털끝만한 데까지 변석하여 앞 사람들이 발견 못한 곳을 발명함으로서 석전(石田) 이병수(李炳壽), 육봉(六峯) 이종택(李鍾宅) 같은 당시 석학들이 호남독보(湖南獨步)로 추켜올렸다.
[저술 및 작품]
저술로는 『야귀재강학록(夜歸齋講學錄)』, 『수산유고(壽山遺稿)』가 있고 「야귀재소명(夜歸齋小銘)」은 도학(道學)이 깃든 작품으로 사회에 회자되었다.
[상훈과 추모]
죽산사(竹山祠)에 배향되었으며, 사우(祠宇) 앞에 강학비(講學碑)가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