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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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榮喆 |
영어음역 | Gim Yeongcheol |
이칭/별칭 | 성규(聖圭),만수(晩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동수 |
성격 | 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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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
성별 | 남 |
생년 | 1842년 |
몰년 | 1911년 |
본관 | 진주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자는 성규(聖圭)이고 호는 만수(晩睡)이다. 영모당(永慕堂) 김질(金質)의 후손이고 진사(進士) 김양대(金養大)의 아들이다. 1842년(헌종 8)에 공음면 선동리(扇洞里)에서 출생하여 20세 때 고창읍 도산리(道山里)로 이사했다.
[활동사항]
자질이 총명하여 일찍 문리가 통했고 효심이 깊어 부모를 잘 섬겨 정성을 다했다. 또한 부모의 상사(喪事)에 시묘살이를 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남다르며 선영에 묘비를 세우고 제전을 갖추었다. 1895년 명성황후(明星皇后)가 시해되고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의병을 일으킬 때 그를 고창의 책임자로 추대하여 소임을 다하였고 흉년에 기민(饑民)이 생기면 구휼에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53세에 진사가 되고 만년에 만수당(晩睡堂)을 일으켜 향리 자제를 가르쳤으니 도산서당(道山書堂)은 한 고을의 대표서당으로 후대에까지 많은 선비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1911년(광무 10)에 70세로 죽었다.
[저술 및 작품]
『만수유고(晩睡遺稿)』 1책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