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31086 |
---|---|
한자 | 朴義 |
영어공식명칭 | Bak Ui |
이칭/별칭 | 충국(忠國),박포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초내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렬 |
출생 시기/일시 | 1600년 - 박의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박의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박의 광교산 전투에서 청나라 서목록 양고리 죽임 |
몰년 시기/일시 | 1653년 - 박의 사망 |
출생지 | 산양동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초내리 |
묘소|단소 | 박의 묘소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예지리 양정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밀양 |
대표 관직 | 평안도 권관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충국(忠國). 증조할아버지는 밀양 박씨 고창 입향조인 양오공(陽梧公) 박서봉(朴瑞鳳)이다. 박서봉은 1463년(세조 9)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하였고, 무오사화로 스승인 김종직(金宗直)과 친척들이 화를 입자 가족을 데리고 밀양을 떠나 전라남도 무안 등을 떠돌다가 추산봉 아래인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초내리 산양동에 정착하였다.
[활동 사항]
박의(朴義)는 1600년(선조 33)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초내리 산양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말을 잘 탔고 활쏘기를 좋아하였으며 총을 잘 쏘아 ‘박포수’라고 불릴 정도로 용력이 뛰어났다. 1624년(인조 2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한양이 함락당하고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는 사이 근위병을 거느리고 전투에 나선 전라도병마절도사 김준용의 조선군은 수원 근교 광교산에서 청군을 만나 여러 차례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전투 중 갑자기 내린 폭설로 크게 패하고 말았다. 당시 박의는 적군의 이동로에 매복하고 있다가 적의 대장을 총으로 명중시켰다. 박의가 죽인 서목록 양고리(舒穆禄 揚古利)[Šumuru Yangguri]는 만주 정황기인으로 누루하치[중국 청나라 태조]의 사위였는데,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청 태종에게 총애를 받던 명장이었다. 서목록 양고리는 화석예친왕(和硕豫親王) 다탁(多鐸)를 따라왔다가 박의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아 죽음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과 청나라 간의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광교산 전투에서 죽은 서목록 양고리는 청나라에서 백양고라(白羊高羅)[양고리]로 알려져 있었다. ‘백양고라’는 무오년에 요동을 함락시킨 자로 관직이 높고 용략(勇略)이 있었다. 청 태종은 서목록 양고리의 죽음을 듣고 크게 통곡하였으며 무훈왕(武勳王)에 봉하였다고 한다. 박의는 적장을 죽인 공을 인정받아 종9품인 평안도 권관(權管)이 되었다.
고창 지역의 양고살재는 누루하치의 사위이자 청의 개국공신인 적장 서목록 양고리를 박의가 사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고개 이름이다. 박의는 1653년(효종 4) 사망하였다. 박의의 후손들이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장두리와 아산면 중월리 중복 등에 살고 있다
[묘소]
박의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예지리 양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