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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상세동 산신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30006
한자 公州上細洞山神圖
이칭/별칭 상세동 산신도,상세동 산신 탱화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국고개길 24[중동 284-1]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1월 20일연표보기 - 공주 상세동 산신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공주 상세동 산신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제작 시기/일시 1896년연표보기 - 공주 상세동 산신도 제작
현 소장처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 충청남도 공주시 국고개길 24[중동 284-1]
원 소재지 상세동 산제당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상세리
성격 불화|산신도
작가 약효(若效)
재질 면본에 채색
관리자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개항기 산신도.

[개설]

공주 상세동 산신도는 1896년(고종 33) 화주(化主) 신양선(申良善)이 공주시 유구읍 상세리 상세동 마을의 산제당 건립과 함께 산신도 제작을 주도하여 봉안한 산신 탱화이다. 공주 마곡사 금어(金魚)[불화를 그리는 스님]인 금호당(錦浩堂) 약효(若效)가 그린 것으로, 태화산 상세동의 산제당 건립과 함께 이안되었다. 2009년 1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크기는 가로 98.5㎝, 세로 94㎝이다. 선계를 상징하는 듯 기암절벽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배경을 이루는 가운데 커다란 노송 아래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 및 남녀 동자 두 명을 묘사하였다. 화면은 중앙에 산신과 호랑이를 크게 묘사하고, 두 명의 동자와 동녀는 자그마하게 묘사하였다. 산신은 상투를 튼 머리에 탕건을 쓰고 붉은색 관복을 입었는데, 한쪽 무릎을 세우고 왼손에 단선(團扇)을 들었으며 바로 그 아래 남녀 두 동자가 있다. 산신과 가까이 있는 동녀는 쟁반에 해태를 받쳐 들고 있고 그 옆 동자는 어깨 너머로 망태기를 든 모습이다.

산신의 허리를 감싸듯 앉아 있는 호랑이는 민화풍의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해태는 벽사(僻邪) 수호신의 하나로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가상의 상징물이며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간주한다. 건물 입구에 좌우로 한 개씩 세우는 것이 보통이며, 주로 궁궐 같은 대형 건물을 화재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속신이 내려온다.

[특징]

공주 상세동 산신도는 전체적으로 구도가 잘 짜여 있고 산신의 수염과 두건 표현, 호랑이와 해태의 세밀한 표현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또한 조성 내력을 기록해 놓은 화기가 있어 제작 연도와 제작자, 봉안 장소 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화기에 의하면, 성상(聖上) 즉위 33년 병신(丙申) 3월 마곡사 심검당(尋劍堂)에서 조성하여 태화산(泰華山) 세동(細洞)으로 이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성상(聖上)은 고종 황제를 말하며 제작 연도는 고종 33년이 되는 해인 1896년이다. 마곡사 인근의 산골 마을인 상세동에서는 1896년 산제당을 건립하고 산향계를 결성하였는데, 이때의 「산향계 좌목(山饗稧座目)」[병신 3월]과 「축원문(祝願文)」[병신 3월]에는 계의 결성 목적과 운영 규정, 계원 명단, 이들의 기원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 좌목의 계원 명단과 축원문의 축원자 명단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신양선이다. 그는 공주 상세동 산신도의 화기(畵記)에도 화주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산제당 건립과 산신도 제작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당시 산신도 제작에는 마곡사에서 불화를 담당하던 화사 집단이 참여하였는데, 금어비구(金魚比丘) 약효를 비롯하여 증명비구(證明比丘) 월선당(月船堂) 월택(月澤), 송주비구(誦呪比丘) 입승(立繩), 지전비구(持殿比丘) 대협(大俠), 홍가비구(洪可比丘) 덕문(德文)이다. 화주는 감찰 신양선이다.

[의의와 평가]

산신과 호랑이의 배경으로 기암괴석과 폭포, 노송을 그려 넣은 19세기 후반 산신도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특히 조성 내력을 기록해 놓은 화기가 있어 제작 연도와 제작자, 봉안 장소 등을 분명히 알 수 있는 19세기 제작된 산신도 중 몇 안 되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와 개항기 산신도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현재까지 상세동에서는 산신제가 지속되고 있고, 산신도 제작 당시에 결성한 산향계 자료도 잘 남아 있어 다양한 측면에서 산신 신앙을 연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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