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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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靈縣 |
영어음역 | Goryeong-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
시대 | 조선/조선,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조선시대 고령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개설]
고려시대까지 고령군에는 상설 지방관이 파견되어 있지 않았다. 940년(태조 23) 고령 지역에는 두 가지의 행정적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읍격(邑格)이 신라 경덕왕의 개명 이래 고령군으로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경산부의 속군으로 편제되어 위상이 하락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금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읍치를 두고 우곡면과 개진면 일원을 포괄하였던 신복현(新復縣)이 없어지고, 야로현이 직할 영역으로 편입되는 등 고령의 직할 영역이 이전보다 확대된 것이다.
고령군의 직할 영역은 1018년(현종 9) 다시 축소되었다. 곧 야로현이 합주로 이속된 것이다. 고령군으로 편제되어 계수관(界首官)적 성격을 가진 경산부의 관할 아래 놓여 있던 상황에서 고령군의 통치는 경산부에 파견된 지방관을 거쳐야 하였지만, 고령군 내부의 조세 수취를 비롯한 행정 업무는 고려 지역 토착 세력으로 구성된 향리 집단에 의해 처리되었다.
향리 집단은 고령의 토성인 신(申), 박(朴), 이(李), 유(兪), 김(金), 백(白), 정(鄭) 등 7개의 성이다. 속읍으로서 고령은 부역과 공물의 사무에서 주현 향리의 횡포에 시달려야 하였으며, 전부(田賦)의 액수 결정에서도 불리한 경우가 많았고, 멀리 떨어진 주읍(主邑)에까지 왕래하는 데도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였다. 고려시대 고령 지역에는 1175년(명종 5) 처음으로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이로써 지방관이 없던 속현으로서 고령에 지방관이 파견되어 주현(主縣)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내용]
고령군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령현으로 행정 구역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 고려 이래 파견되던 감무 대신에 종6품인 현감이 파견되었다. 아울러 지방 교화의 진흥을 위해 세종 때부터는 훈도(訓導) 1명이 파견되었다. 또한 1455년(세조 1) 지방 군제 개편 때 전국적인 군익도 체제 아래에서 성주와 더불어 성주도의 중익(中翼)에 소속되었다. 이어 1457년(세조 3) 진관 체제가 확립되면서, 경상도는 8개의 거진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의 진을 관할하였다. 이때 고령은 초계, 합천, 거창, 지례와 함께 성주진에 편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중익의 기능이 거진으로 옮겨지는 등 진관 체제의 부분적인 재조정이 이루어졌다.
[변천]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정하면서 고령현이 고령군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