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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460
한자 高靈古衙里壁畵古墳
영어의미역 Ancient Tomb of Mural in Goryeong Goa-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 산 13-1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조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8년 12월 19일연표보기 -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 사적 제16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 사적 재지정
성격 고분|벽화고분
건립시기/연도 6세기 후반대 초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 산 13-1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에 있는 대가야 시대의 벽화고분.

[개설]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은 가야 유일의 벽화고분으로, 구조와 축조 방식은 백제 중앙의 묘제를 답습한 대형 무덤이다. 피장자(被葬者)는 고분의 규모와 정밀성 및 벽화 등으로 보아 대가야 말기의 최고위 부부[왕과 왕비]로 추정된다. 고분의 제반 내용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고분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으므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위치]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대가야의 주 고분군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남동쪽으로 약 500m 떨어져 위치한 고아리 고분군에 소속되어 있다. 고아리 고분군대가야 왕도의 고분군이라는 연장선상에서 범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 포함될 수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최남단의 해발 166.5m 야산 정상부로부터 동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있다.

이 산등성이에서 남북으로 가까이 조영된 대형 고분 2기 가운데 하나이다. 앞쪽에는 남쪽으로 흐르는 대가천과 동쪽으로 흐르는 안림천[조선시대의 소가천]이 Y자형을 이루면서 회천으로 합류하는 지대이다. 앞쪽의 소로는 일제강점기에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관통하는 국도가 개설되기 전에 서부 경남을 오가는 주 도로였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63년 알려져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간략한 실측을 하였다. 1964년 1차로 보수한 뒤 1977년에는 시멘트로 출입구를 만들고 봉분 표면에 회를 두텁게 덮고 흙을 덧쌓아 올렸다. 1984년 회층과 덧쌓은 봉토의 중압으로 석실의 벽석 균열과 면회 탈락 및 결로 발생을 막고 보완하는 보수 공사를 하였다. 그때 계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석실의 정밀 실측 및 봉분 외피층 조사를 하였고, 아울러 벽화의 모사 작업도 관계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형태]

고분은 산등성이에서 남쪽 비탈면에 걸쳐 위치하며, 묘향을 정남으로 둔 굴식 돌방무덤이다. 현실(玄室) 구조는 평면 장방형의 터널 천장식이며, 우편재의 긴 연도(羨道)[널길]를 갖추었다. 벽 석재는 주로 장대형 할석과 판상 할석이며, 양 장벽의 내경(內頃) 범위에는 내경 각도에 맞추어 가공한 사변(斜邊) 석재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중압이 가장 큰 현문 부분 천장의 미석(楣石)은 두꺼운 긴 석재를 사용하였다. 현실 바닥에는 중(中)자 형태의 배수구가 있고, 그 사이에 폭만 다르고 길이가 같은 두 관대(棺臺)를 나란히 설치하였다.

주관대(主棺臺)는 서벽과 약간 떼었고, 부관대(副棺臺)는 동벽에 붙였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3.75m, 너비 2.82m, 높이 3.12m이다. 호석은 직경 18m의 원형이며, 봉분 높이는 현실 바닥 중앙에서 6.2m이다. 공간 전체 면을 패분(貝粉)으로 만든 회로 미장하였다. 회 미장 기법은 천장돌의 연결 틈을 포함한 모든 석재의 틈을 회로 메우면서 두텁게 바르되, 연화문(蓮花紋)을 그려 넣을 천장의 판석 아랫면에는 얇게 회칠을 하였다.

회는 먼저 볏짚을 섞은 회를 초벌로 발라 말린 뒤 다시 깨끗한 회로 덧발랐다. 한편, 벽면 회 중에는 매끈한 상태가 되도록 평직 삼베로 문댄 흔적과 작업자의 지문도 발견되었다. 벽화는 표면의 면회가 채 마르기 전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벽화를 그린 것으로 파악되었다. 현실과 연도의 천장돌에는 홍색·녹색·흑색·갈색 안료로 그린 8판 2중의 연화 12개가 남아 있다.

벽면에는 일부 채색 자국과 당초문(唐草紋) 또는 초화문(草花文)과 유사한 모양의 채색이 희미하게 관찰된다. 따라서 원래는 벽면과 천장 전체에 그림을 배치하되 천장 면은 연화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어느 시점이 지나서 회가 탈락된 부분에는 점토를 발라 보수한 흔적도 보인다. 이는 추가로 매장한 여성 피장자를 안치하기 직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

1차 실측 조사를 할 때 석실 내부에서 청동 원두정(圓頭釘), 꺾쇠형 철기, 대부호의 대각편, 문살무늬 토기편 및 인골편이 출토되었다. 이후 정밀 실측 조사에서는 봉토 중에서 문살무늬, 새발자국무늬, 물결무늬가 있는 토기편 및 약간의 뚜껑편이 출토되었다. 아마 봉토를 쌓을 때 주위의 다른 고분의 것이 들어간 것으로 추측된다.

[현황]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은 1968년 12월 19일 사적 제16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고분의 관리면적은 25,487㎡이다. 현재는 연문부에 철제 출입문이 달려 있으며, 봉분은 원상태에 가깝게 복원되고 잔디가 심어져 있다. 주위에는 철제 펜스가 둘러져 있으며 사적 표시와 함께 벽화고분의 간략한 설명문을 갖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은 가야 유일의 벽화고분으로, 굴식 돌방무덤 구조와 축조 방식 및 형태를 볼 때 백제 중앙인 공주·부여에서 유행하였던 여러 요소가 적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내부의 유물은 거의 도굴되었으나, 굴식 돌방무덤 석실의 대형 봉토분으로 연화문 위주의 생생한 벽화가 남아 있다. 고분이 지닌 여러 내용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고분 문화는 물론 고대 미술·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지** ※(고령고아동벽화고분 → 고령 고아리 벽화 고분)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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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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