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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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守弘 |
영어음역 | Bak Suhong |
이칭/별칭 | 유언,봉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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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 |
성별 | 남 |
생년 | 1588년 |
몰년 | 1644년 |
본관 | 밀양 |
대표관직 | 경주부윤 |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유언(裕彦), 호는 봉곡(蓬谷). 아버지는 박정실(朴鼎實)이며, 어머니는 벽진이씨(碧珍李氏)로 북봉(北峰) 이민선(李敏善)의 딸이다.
[활동사항]
박수홍(朴守弘, 1588~1644)은 매돈(梅墩) 김번(金蕃)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承文院權知副正字)에 임명되었다. 이후 성현찰방, 성균관전적, 예조좌랑을 거쳐 예조정랑에 오르고 춘추관기주관을 겸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강화도로 호종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금구현령으로 부임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전쟁 복구에 힘썼다. 이후 예조참의, 평양부서윤, 통례원상례, 사헌부지평, 사헌부장령, 온성부사, 병조참지, 승정원좌승지, 형조참의 등을 거쳐 1640년 경주부윤으로 부임하였고 경주진병마절제사를 겸하였다. 1643년 벼슬에서 물러나 상주에서 여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문집인 『봉곡집(蓬谷集)』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으며,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이 지은 묘갈비가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김제(金堤)의 금구향교(金溝鄕校)에 백성들이 세운 송덕비가 있다. 1640년 나라에서 삼대(三代)에까지 은전(恩典)이 내려져 증조부 박응종(朴應宗)은 통정대부 통례원좌통례에 추증되었고, 할아버지 박희민(朴希閔)은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아버지 박정실(朴鼎實)은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