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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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湜 |
영어음역 | O Sik |
이칭/별칭 | 위숙(渭叔),임계(臨溪),정간공(靖簡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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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봉곡리 |
성별 | 남 |
몰년 | 1426년 |
본관 | 울산 |
대표관직 | 이조판서 |
[정의]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위숙(渭叔), 호는 임계(臨溪).
[활동사항]
오식은 1400년(정종 2) 진사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문과에 급제하였다. 연산목사·남원목사·청주목사를 역임하였다. 그 후 제주목사·인령부윤·중군동지총제·좌군총제를 거쳐 경주부윤으로 재직하다가 죽자 세종이 부의(賻儀)를 내렸다.
1409년(태종 9) 남원부사로 재직 시 “속공노비(屬公奴婢) 중 도망자를 본주(本主)가 체포하여 관에 고하면 상을 준다”라는 신법령이 반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주목사 이사강(李斯剛)이 조상 전래의 노비를 새로 얻었다고 관청에 거짓으로 고하여 포멱(捕覓)의 공으로 노비 1구를 상으로 받았다. 이 일에 대해 남원부에 고장(告狀)이 접수되었을 때 그 잘못됨을 살피지 않았다 하여 의정부로부터 혼매남상(昏昧濫賞: 사리에 밝지 못하여 함부로 상을 내림)의 죄에 해당된다는 탄핵을 받았다. 1416년 제주안무사 재임 중 한라산 남쪽 90여 리를 동서로 나누어 현(縣)을 설치하고 동쪽을 ‘정의(旌義)’, 서쪽을 ‘대정(大靜)’이라고 할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간(靖簡)이며,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대망리에 있는 경락서원(景洛書院)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