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8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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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尾桃李寺極樂殿 |
영어의미역 | Geungnakjeon Hall of Dorisa Temple |
이칭/별칭 | 도리사 극락전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403[도리사로 52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희돈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3년 4월 8일 - 구미 도리사 극락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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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구미 도리사 극락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불교 건축물 |
양식 | 팔작지붕 단층집 |
건립시기/일시 | 19세기 초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3칸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403[도리사로 526] |
소유자 | 도리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전.
[개설]
도리사는 직지사의 말사로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440년(눌지왕 24)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고 있음을 보고 절을 지었다는 유래가 전한다.
[위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403번지[도리사로 526] 도리사 경내에 위치하며 태조산(太祖山)을 배경으로 도리사 우측 끝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변천]
도리사는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최초의 절이라 하며 원래의 절터는 태조산(太祖山) 기슭에 있는 옛 절터로 추정된다. 창건 이후 조선 중반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으며 1677년(숙종 3) 화재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불에 탔다. 1729년(영조 5) 대인(大仁)이 아미타불상을 개금하여 인근의 금당암(金堂庵)으로 옮겨 봉안하고 도리사로 개칭하였다.
전내 본건물의 중수(重修)·단청(丹靑)에 관계된 현판을 보면 「강우선산부동태조산도리사금당암중수기(江右善山府東太祖山桃李寺金堂庵重修記)」 말미(末尾)에 ‘가경십이년무진팔월일(嘉慶十二年戊辰八月日)’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1807년(순조 7)에 해당된다. 1823년(순조 23) 조사전(祖師殿)을 중수했다. 1876년(고종 13) 극락전을 중건하고 1922년 칠성각을 건립했다.
「선산도리사법당중수기(善山桃李寺法堂重修記)」에는 ‘대청광서이년병자(大淸光緖二年丙子)’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1876년(고종 13)이다. 「도리사중창기(桃李寺重創記)」에는 ‘불기이구오구년신미양월하완(佛紀二九五九年辛未陽月下浣)’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1930년에 해당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면 약 70년 간격으로 중창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주변에는 태조선원(太祖禪院)·삼성각·조사전·요사채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조사전 좌측 높은 곳에는 1977년 해체 복원한 사리탑과 적멸보궁이 배치되어 있다. 화강석 가구식 기단 위에 넓고 큰 막돌 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워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했다. 벽체를 모두 판벽으로 구성하고 바깥 벽면에는 벽화를 그렸다.
간살이 넓은 어칸에는 4분합 굽널띠살문을 달고 간살이 좁은 양 퇴칸에는 같은 모습의 2분합 굽널띠살문을 달았다. 좌측면 건물 앞쪽 칸에는 외짝문을, 배면에는 어칸에 두짝문을 설치했는데 이 문들 역시 정면의 것과 동일한 형식이다. 공포는 다포계형식으로 어칸에는 간포(間包)를 둘, 퇴칸에는 하나를 놓고 외부는 3출목, 내부는 4출목으로 꾸몄다. 외부 살미는 휘어 오른 3개의 앙서[仰舌]와 1개의 수서[(垂舌]로 이루어져 있다.
앙서 윗면에는 연화 및 연봉각으로 장식하고 간포의 수서 위에는 출목도리와 장혀에 끼운 봉두를 얹어 놓았다. 내부 운궁 밑면에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연화 1개와 연봉 4개가 차례로 장식되어 있다. 겹처마 팔작으로 구성된 지붕부는 용마루 양단을 치미로 장식하고 네 귀의 추녀를 활주로 받쳐 놓았다.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중앙 뒷부분에는 내진주를 세우고 후불벽을 설치했다. 후불벽 앞에 불단을 앉히고 불벽에는 큰 탱화를 걸고 그 위쪽에는 닫집을 시설하였다. 상부 대량 위에는 용두로 조각된 양쪽 측면보의 머리가 걸쳐 있고 그 상부 천장은 우물반자로 꾸며져 있다. 건물 외부는 금단청이고 내부는 모로단청이다.
[현황]
현재는 도리사의 본당의 기능을 하고 있으나 원래는 도리사의 부속암자인 금당암의 법당이며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법당 내에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법당의 판벽에 그려진 벽화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구미 도리사 극락전의 조성연대는 「도리사금당암중창기」(1870), 「선산도리사법당중수기」(1876) 등으로 보아 19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판단된다. 단청은 모두 잘 되어 분위기는 밝고 경쾌하며 아담한 편이다. 기둥 상부에는 창방·평방·주두를 안팎으로 감싸고 있는 안초공이 있고 네모서리 기둥의 창방 뻘목과 귀한대 하부에는 보기 드문 파련각한 낙양이 있는데 이런 공포형식은 대체로 조선 후기 모습으로 1870년대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