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0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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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天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두헌 |
활동 시기/일시 | 15세기 전반경 - 장천열 적성현에서 옥구현으로 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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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장천열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
거주|이주지 | 장천열 이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
묘소 | 장천열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
성격 | 입향조 |
성별 | 남 |
본관 | 인동 |
대표 경력 | 한성 판윤 |
[정의]
조선 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세거한 인동 장씨 한성판윤공파 입향조.
[개설]
장천열(張天烈)은 15세기 전반 경에 적성현[현재의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에서 옥구현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옥구읍,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가계]
장천열은 인동 장씨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18세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선산 부사를 지낸 장대유(張大維)이고, 할아버지는 공조 판서를 지낸 장윤문(張倫文)이고, 아버지는 공조 판서를 수여받은 장한신(張漢信)이며, 외할아버지는 밀양 박씨이고, 장인은 강릉 탁씨이다.
[활동 사항]
장천열의 선대부터 아버지인 장한신까지의 묘는 모두 적성현(赤城縣)에 있고, 장천열과 장천열의 후손들 묘는 옥구와 임피에 있다. 따라서 장천열이 적성에서 임피로 이주한 것으로 판단한다. 장천열은 한성 판윤을 지냈다. 장천열이 옥구로 이주한 시기는 그의 8세손 장후준(張後浚)[1638~1714]의 생졸 연도로 보아, 15세기 전반 경으로 추정한다. 임피 입거 이후 후손들이 임피면과 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묘소]
장천열의 묘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