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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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銀波湖水公園-四季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나운동 1223-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종안 |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의 저수지(貯水池)와 은파 호수 공원(銀波湖水公園).
[개설]
군산은 지명에 나타나듯 나지막한 산들이 곳곳에 무리를 이루고 있는 도시이다. 따라서 산과 바다, 하천과 들녘이 어우러지면서 보여주는 자연의 풍치도 뛰어나다. 또한, ‘뜰’로 불리는 충적 평야와 해발 100m 안팎의 산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담하고 고즈넉한 마을과 부근 들녘에 농업 용수를 공급해주는 저수지도 눈에 띈다.
군산 지역 평야는 20세기 이전부터 농사를 짓던 묵은 논[숙답]과 일제 강점기 대규모 간척사업과 배수 개선 사업으로 만들어진 새 논[신개척답]으로 나뉜다. 그중 서수뜰, 임피뜰, 둔덕뜰, 개정뜰, 선제뜰은 묵은 숙답 평야이고 나포 십자뜰, 대야뜰, 수산 이곡뜰, 미성뜰, 옥구간척지[어은리, 옥봉리, 선연리] 등은 신 개척답 평야이다.
군산은 금강, 만경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어 지류[하천] 또한 많다. 대표적인 하천으로 탑천(塔川), 미제천(米堤川), 어은천, 둔덕천(屯德川), 경포천(京捕川) 등을 꼽는다. 그중 탑천, 미제천, 어은천은 만경강 수계에, 둔덕천과 경포천은 금강 수계에 속한다. 죽성 포구[현 째보 선창]로 흘러드는 샛강[일명 세느강]은 아예 이름이 없었고, 구암천은 도시 개발로 물줄기가 중간에 끊겼으며, 진즉 복개되어 도심권의 중심 도로가 된 하천[대학로]도 있다.
하천의 발원지 및 집수역(集水域)을 살펴보면 탑천은 함라산과 취성 산지, 미제천은 지곡동의 미제지(米堤池), 어은천은 옥구읍 옥구 저수지[마산 방죽], 둔덕천은 군산시 성산면 오성산과 고봉산 기슭, 경포천은 군산시 옥산면 옥산의 금성산 기슭으로 전해진다. 특히 둔덕천은 군산에서 유일한 자연 하천으로, 자연 상태의 하천은 20세기 들어 대규모 농업 개발과 간척 사업 등으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군산의 저수지]
군산은 예로부터 물의 고향이라 했다. 그에 걸맞게 크고 작은 저수지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데, 20세기 이후 축조된 주요 저수지만 20개가 넘는다. 마을 별로 보면 성산면의 성덕 저수지, 옥산면의 백석 저수지, 옥구읍의 옥구 저수지는 일제 강점기에, 나포면의 대동 저수지·부곡 저수지, 임피면의 축산 저수지·금굴 저수지·우곡 저수지, 성산면의 죽곡 저수지·후곡 저수지·요동 저수지, 회현면의 대위 저수지, 미성동 옥녀 저수지 등은 해방 후 축조됐다.
그중 옥구 저수지는 옥구 간척지 관개를 위해 1923년 탱크형 저수지[평지에 사면의 둑을 쌓아 수로를 이용해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로 축조됐으며 제방 길이만 6㎞가 넘는다. 사방이 막혀 집수역이 없는 관계로 농한기에 전라북도 완주군 대아 저수지 물을 대간선 수로로 이동해서 농업 용수로 사용하였다. 한때는 미군 기지 생활 용수로 쓰였고, 요즘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자전거 하이킹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좋다.
기록에 나타나지 않아 축조 연대를 알 수 없는 저수지도 상당수에 이른다. 회현면의 원우제, 옥구읍의 훈제·금산제·신장제, 임피면의 왕산제, 나포면의 강정제, 개정면의 충량제·냉정제, 대야면의 중초산제·북초산제 등이다. 그러나 이들 재래 저수지는 지곡동에 있는 미제지[은파 호수 공원] 개수 과정에서 보듯 숙답의 관개에 이용되면서 꾸준히 보수 유지되어 왔다.
오랜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미제지 용수는 1908년 옥구 서부 수리 조합 인가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이는 탁지부(度支部)[조선 시대 호조(戶曹), 지금의 재경부에 해당]로부터 허가받은 우리나라 수리 조합의 시초가 된다. 당시 미제지 규모는 지금의 절반 정도였고, 1985년 국민 관광지로 지정된 후 지금은 은파호수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산책 탐방로와 구불길로 거듭난 군산 제1 수원지와 제2 수원지]
일제 강점기 일본은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점방산과 설림산 계곡 일대[소룡동]에 연인원 10만 명을 동원하여 3년[1912~1915] 간의 공사 끝에 완공한 군산 제1 수원지[월명 호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도심의 산 위에 위치한 호수이다. 해방 후에도 식수로 사용해오다 저수지를 순환하는 산책로[5㎞]가 조성되면서 새벽 등산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 군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노년층에게 제1 수원지는 아련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엔 인근의 은적사와 함께 군산의 으뜸 유원지로 꼽혔기 때문. 채만식 소설 『탁류』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했던 이곳은 저수지 제방을 따라 조성된 넓은 공간에 벚나무를 심어놓아 해방 후에도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상춘객으로 붐볐으며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였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1905년 전라 감사 이석우가 말을 타고 선종암에 들렀다가 훗날 이곳[월명 호수]에서 낚시를 하게 될 것이라 예언했다 한다. 호수에 비친 구름이 물결을 따라 춤추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도심지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집수 구역 내에 큰 오염원이 없어 상급수를 유지하고 있다. 제방과 수문[수위 측정 탑]은 2005년 11월 국가 등록 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됐다.
일본이 1939년 군산시 옥산면에 축조한 제2 수원지[옥산 저수지]는 해방 후에도 상수원으로 사용하다가 1963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토지 이용과 사람 출입이 통제됐다. 그 후 45년이 지난 2008년 보호 구역이 해제되면서 저수지 주변 마을과 산들이 구불길 코스로 개발되었다. 구불길은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숲이 우거진 길을 여유, 자유, 풍요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여행길’이란 뜻이다.
반세기 가까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보존 가치가 높은 생물과 방풍림, 습지 등이 잘 보존되고 있어 생태 탐방 명소가 됐으며 군산의 10개 구불길 중 4번째[구슬뫼 길] 코스로 선정되었다. 저수지를 둘러싼 산들이 작은 구슬처럼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구슬뫼길은 걷기 예찬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수변 산책로와 등산로를 따라 해발 100m 남짓의 청암산[샘산]에 오르면 옅은 안개에 가린 군산 시내와 금강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국민 관광지가 된 미제지(米堤池)의 세 바위 전설]
오늘날 은파호수공원[이하 은파 호수]으로 불리는 미제지는 1530년(중종 25)에 제작된 인문 지리서 『신증 동국 여지 승람』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문헌의 옥구현 산천조에 따르면 ‘미제지는 옥구현 북서쪽 10리에 있으며 주위가 1만 910척[약 3.3㎞]에 달한다’고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1945년 해방 후에도 선제뜰 관개용 저수지였던 은파 호수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제방을 높이는 확장 공사로 둘레가 6.9㎞로 늘어난다.
은파 호수 축성 연대는 확실치 않다. 『신증 동국 여지 승람』이 완성된 시기로 미루어 고려 시대에 축조됐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팔도 지지』, 『전국 지지』 등을 근거로 백제 시대까지 소급하는 향토 사학자도 있다. 주변 설화로는 「세 바위[애기바위, 중바위, 개바위]」, 「애기 장수 서울터 만들기」, 「금도구통, 금도구때」 등 여러 전설이 내려온다. 그중 한국 전설 대계에 수록된 「세 바위 전설」을 소개한다.
옛날 아주 옛날에 은파 호수 가장자리에 큰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한복판에 심성이 놀부처럼 사납고, 마음씨 고약한 부잣집 구두쇠 영감이 살았다. 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원했으나, 심술궂은 영감은 시주 대신 흙을 퍼주거나 돼지 분뇨를 퍼주면서 내쫓았다.
이를 본 마음씨 착한 그 집 며느리가 봉변을 당하고 돌아서는 스님을 쫓아가, 많은 쌀과 금은 보화를 시주하면서 시아버지 허물을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그에 감사했던 스님이 어느 달밤 갑자기 찾아와 며느리에게 극락 장생을 하려면 지금 당장 이 집을 떠나야 한다고 서두르니 며느리는 허겁지겁 세 살배기 어린 아들을 둘러업고 따라 나섰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서 스님은 엄숙한 말투로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이승을 떠나서 저승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는 경계가 있는데 이 경계를 넘을 때는 이승의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뒤를 돌아다보면 하늘의 벌을 받아 선 자리에서 돌이 되는 것이니 명심 또 명심하여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며느리는 억눌렸던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정든 세간과 집, 시아버지, 권속들, 그리고 함께하던 하인들 생각에 그저 한 번쯤 돌아보는 것쯤은 어떠랴? 하고 지금의 금배제[현재 지곡 초등학교 부근 산]에 올라, 살던 마을을 돌아보는 순간, 집도 마을도 모두 물바다가 되어 출렁거렸다.
며느리는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엎어져 죽게 되고, 아기도 함께 돌[애기 바위]이 되었다. 며느리를 인도하던 스님도 인도를 잘못한 탓으로 돌[중바위]이 됐으며, 개는 무슨 죄가 있으랴, 영문도 모르고 주인을 따라 나섰던 탓에 함께 돌[개바위]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야기 속에 세 가지 의미가 복합되어 있어 한국의 설화 가운데 특이한 종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권선 징악이며, 둘째는 은파 호수가 생긴 연원이며, 셋째는 왕생 극락의 교훈의 구조로 욕심을 버리고 좋은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극락의 복이 있다는 교훈적인 설화이다.
[미제지 주변의 지명 유래]
미제지는 우리말 풀이로 쌀뭍 방죽이다. 방죽 동북쪽 마을 사람들은 절메 방죽이라 했으며 ‘은파(銀波)’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는 미제 방죽으로 불리었다. ‘은파’는 1972년 이곳에서 유원지 영업을 준비하던 류 모씨가 허가 서류에 자신의 아버지 호[銀波]를 사용한 데서 비롯된다. 그 후 1975년 교통부에서 은파 유원지[이하 은파 호수]로 허가가 나면서 미제지나 미제 방죽 보다 ‘은파’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예부터 아흔 아홉귀 방죽이라 해서 굽은 귀가 많기로 유명한 은파 호수는 옛날 한 아기 장수가 이곳을 서울터로 만들려고 백귀로 만들면 밤 사이에 한 귀가 무너지곤 해서 도로 아흔아홉귀가 되어버려 끝내 백귀를 만들지 못하고 울면서 떠났다는 내용의 「애기 장수 서울터 만들기」 전설도 있는데, 비록 설화이지만, 이 방죽에 굴곡이 많았고 지형이 매우 뛰어났음을 암시하고 있다.
은파 호수는 1985년 국민 관광지로 지정되었고 이어 전국 100대 관광 명소로 선정되면서 은파호수공원이라 부르게 되었다. ‘은파’에서 은(銀)은 사랑의 빛, 즉 희망이고, 파(波)는 풍요의 물을 나타내며 빛과 물이 합성된 우리말 표현으로 호수 주변의 지명 유래를 알아본다.
◇ 나룻리(羅雲里): 은파 호수와 접하고 있는 나운동의 옛 지명이다. 은파 호수가 생기기 전까지 배가 이곳까지 닿아 물화를 실어 날랐다고 전한다. 마을이 들어선 후에도 여전히 배가 닿았던 나루터라 해서 나룻리라 부르게 되었다. 나룻리는 일제 강점기 한자 표기화 하면서 나운리(羅雲里)로 쓰이다가 군산시로 편입되면서 나운동(羅雲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 임방절: 임방절은 두 가지 설이 내려온다. 하나는 임방(壬方)이라는 뜻이다. 임방은 정북에서 서쪽으로 15도 정도 안쪽을 말한다. 절메산에서 보면 임방절이 정확하게 임방(壬方)이 된다. 두 번째는 임방(任房)으로 옛날 보부상들이 모여 놀던 곳이라는 뜻이다. 임방절은 이곳에 있던 절(寺) 이름이다.
◇ 벌이 마당: 옛날에는 은파 호수 주변이 미곡 집산지여서 전국 각지의 보부상[등짐, 봇짐장수]들이 모여들어 이곳의 쌀을 전국으로 유통 시켰을 것이며 그들이 모이는 마당을 돈벌이하는 장사꾼이 모이는 마당이라는 뜻으로 전해진다.
◇ 절메산: 은파 호수 수면 가운데로 산이 길게 남으로 커다란 함선처럼 떠 있는 모습의 산을 말한다. 절메산의 한자 표기는 사산(寺山), 우리말은 ‘절메’이다. 절메’이라 한 것은 메[뫼, 산]가 두 번 겹친 격인데 우리말의 어습에서 끝말이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새터: 은파 호수 동북쪽 고샅을 절메라 하며 동쪽으로 새터가 있다. 이 새터는 한밭골[大田里]에서 새로 닦은 터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마을을 형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 안백두게: 백두게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백두게는 은파 호수와 인접한 마을로 옛 지명은 백토리였다. ‘백토(白土)’가 어원변이 되어 ‘백두’로 부르게 됐으며 게는 마을이란 뜻이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하얀 흙이 나와 그릇을 구웠다고 하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방아동: 안백두게 고샅에서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지금은 물에 잠겼으나 널찍한 밭과 공터가 있었고 산딸기가 지천이었다. 그 언저리를 방아동이라 했다. 옛날에 벼를 찧는 방앗간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져 붙여진 이름이다.
◇ 사창골: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이곳에 사창(社倉)을 두고 방아를 찧어가곤 했던 쌀곳 마을이 아닌가 싶다. 군산의 향토 사학자들은 옛날 이곳은 쌀의 입출이 빈번했으며 지방과 서울로의 수송이 째보 선창을 통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은파 호수 입구 길목의 고샅을 사챙이라 불렀는데 이도 사창(社倉)의 와전으로 보인다. 이곳에 다랑논이 층층이 있었다 한다.
◇ 용처: 은파 호수의 ‘사창골’에 다다르는 산자락에서 서북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지름 70m 정도의 늪지대가 있다. 예로부터 이곳을 용처(龍處)라 불러왔다. 이곳에서 물이 솟아 방죽의 원천수가 되었다는 뜻으로 용천(龍泉)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 개정지: ‘개정지’는 야외 부엌[정지]이라는 말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임시로 밖에 만들어 놓은 부엌이라는 뜻. 위쪽에 있는 사창(社倉)에 벼와 쌀의 입출고가 빈번하면 일손이 많이 필요하므로 일꾼들의 밥을 부쳐 먹었을 것이다. 따라서 늦가을에서 이른 봄까지 ‘개정지’를 마련하여 밥을 짓던 곳으로 전해진다.
[전국 100대 관광 명소로 선정된 은파호수공원 ]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표기된 은파호수공원은 본래 농업용 저수지였다. 1960년대까지도 혼자 걷기 무서울 정도로 한적했던 은파 호수는 1975년 위락 시설과 음식점, 휴게실 등을 갖춘 유원지가 되었고, 1985년 이후 수상(水上) 상가(商街)와 제방 아래 포장 마차가 철거되는 등 환경 정화 작업이 추진됐다.
시민의 여가 문화가 향상되면서 추진된 은파 관광지 개발 사업[1995~2014]에 따라 2006년, 2007년에 완공된 물빛 다리와 음악 분수는 군산 지역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2008년에는 주차장, 체육 시설 등 편의 시설을 보강하고, 잡초로 우거진 유수 지역을 정비했다. 2009년에는 생태 습지, 물빛 다리 무대 및 광장을 조성하였고, 2010년 자전거 도로[산책로]가 개설되어 누구나 아흔 아홉 구비를 돌면서 은파 호수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볼거리와 편의 시설이 제공되면서 군산의 대표 관광지로 부상한 은파 호수는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지역 자원 콘테스트에서 전국 100대 관광 명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엔 택지 개발로 인근 아파트 근린 공원에 보관되어 있던 애기 바위, 중바위, 개바위의 설화 시설물을 조경 휴게소 부지로 이전해 이야기가 있는 테마 공원을 조성했다. 햇살 받은 물결이 아름다워 ‘은파’라 불리는 도심 속의 여유로운 쉼터인 은파 호수는 구불 5길[물빛 길] 코스이기도 하다.
국민 관광지로 지정된 은파호수공원 총면적은 257만 8,524㎡로 봄에는 만개한 벚꽃이 입구에서부터 벚꽃 터널을 만들어주고, 여름에는 아카시아 향기와 느티나무의 짙은 녹음을 만끽할 수 있다. 가을에는 산책로를 따라 알밤을 주우며 산책을 즐길 수 있으며 산천에 목화솜을 깔아놓은 듯한 겨울 설경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군산 시민은 물론 외지인들에게도 사랑받는 국민 휴양지 은파 호수 주변 명소를 따라 살펴본다.
◇ 물빛 다리[Mulbitdari]: 은파 호수의 상징으로 길이 370m, 너비 3m의 국내에서 유일한 보도 현수교이다. 전설에 나오는 애기 바위, 중바위, 개바위를 형상화해 이벤트·만남의 광장, 물빛 터널, 전망대 등 주요 시설을 가족, 부부, 연인, 친구간의 사랑을 테마로 구성했다. 야간에 조명으로 연출되는 빛의 아름다움은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 음악 분수[Music Fountain]: 조명과 함께 음악에 맞춰 노래하며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분수이다. 은파 호수의 특성과 이미지를 반영한 꽃잎 형태의 분수로 호수와 물빛 다리를 연계한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수이다. 매회 20분씩 하루 8회 운영한다.[계절별 운영 횟수 조정됨]
◇ 입구광장 및 수변 무대[Entrance Square and Waterside Stage]: 은파 호수 입구에 위치한 광장은 대표적인 휴식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호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변 무대에서의 문화 예술 공연은 멋과 흥을 한층 더한다.
◇ 벚꽃 산책로[Cherry Blossom Road]: 은파 호수를 일주하는 6.5㎞의 산책로에서는 매년 봄마다 탐방 및 걷기 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되며 주말에는 시민들의 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요즘엔 자전거 도로 및 편익 시설 확충으로 이용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 인라인 스케이트장[In-line Skating Field]: 200m 트랙을 갖춘 4,160㎡ 규모로 남녀 노소, 가족 및 각종 동호회 등 많은 관광객의 웰빙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 생활 체육장[Living Sports Center]: 윗몸 일으키기, 철봉, 매달려 건너기 등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생활 체육장이 조성되어 있다.
◇ 보트장[Boating Place]: 자녀들과 함께 오리 보트, 모터 보트 등을 이용해 은파 호수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 연꽃 자생지[Lotus Colony]: 매년 여름[7월~8월] 연꽃 자생지에는 백련, 수련, 노랑어리연 등 수십 종의 연꽃과 수생 식물이 만개하여 볼거리를 제공한다. 호수 주변 용둔리가 고향인 고은 시인은 ‘넙죽넙죽 한 홍어나 왕가오리 같은 연 잎사귀로 덮인 물 위로 고상하기도 하고 요염하기도 한 분홍 연꽃 봉오리들이 일제히 솟아나 핀 풍경은 장관이었다’고 회고한다.
은파 호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물빛 다리를 지나 음식점 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군산 근해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은 물론 얼큰한 민물 매운탕도 맛볼 수 있다. 시래기와 민물 고기가 어우러져 토속적인 맛이 나며 옹기에 해주는 밥맛도 일품이고, 밥을 먹은 후에 끓여주는 누룽지는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