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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군지』[1924]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376
한자 沃溝郡誌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 『옥구군지』[1924] 간행
성격 향토지
저자 문종거(文鍾擧)

[정의]

1924년 옥구향교에서 문종거(文鍾擧) 등이 발행한 전통적인 형식의 옥구군에 관한 군지.

[개설]

현재는 군산시에 편입된 옥구군은 전라북도 북서부에 있던 군으로, 옥구현[서남부]과 임피현[동북부]이 합해진 곳이다. 옥구현은 삼한 시대에 마한의 막로국(莫盧國)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며,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마서량현(馬西良縣)이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옥구현으로 개칭해 임피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임피군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조선에 들어 1397년(태조 5)에 진(鎭)을 설치하고, 1403년(태종 3)에는 회미현(澮尾縣)을 병합했으며, 뒤에 현감을 파견함으로써 조선 시대 동안 옥구현을 유지했다. 1487년(성종 18)에 군산진(群山鎭) 옆에 조창인 군산창이 설치되어 전주 등 7개 고을의 조세를 수납하는 전라도 조운(漕運)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다. 옥구의 별호는 옥산(玉山)이었다.

지방 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비로소 전주부 옥구군, 1896년에 전라북도 옥구군이 되었다. 일본과의 수호 조약 체결 후 1899년에 군산포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개항장과 옥구감리서가 설치되어 옥구부로 승격되었다. 1912년에 이리-군산 간 군산선이 개통되고 1914년 호남선의 전 구간이 개통되어, 이 지역은 내륙과 바닷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1914년 군면을 통폐합 때 개항장을 중심으로 급속히 도시로 발달한 지역이 군산부로 승격되어 옥구군에서 분리되고, 반면에 임피군옥구군에 합병되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군산부의 정면·서면이 구읍면으로, 동면·박면이 옥산면으로, 장면·풍면이 회현면으로, 군산부의 북면, 충청남도 오천군 하남면, 전라남도 지도군 고군산면이 미면으로 통합되었다. 임피군은 폐지되고 임피군의 13개면이 6개면으로 통합되어 옥구군에 편입되었다.

1910~1930년에 지금의 옥서면 일대에 간척사업이 실시되어 넓은 지역에 농경지와 간척촌이 형성되었다. 1931년에 구읍면이 옥구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80년에 옥구면이 옥구읍으로, 미면이 미성읍으로 승격되고, 1986년에 미성읍이 관할하던 도서지역이 옥도면으로 분리되었다. 1989년에 미성읍과 옥도면 일부가 군산시에 편입되고, 옥구읍 서부출장소가 옥서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 행정 구역개편으로 하나의 생활권이었던 군산시와 옥구군이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새로운 형태의 군산시가 되었다.

[형태]

4권 4책이며 목활자본이다. 크기는 30.3×20.4㎝이다.

[구성/내용]

이 책은 모두 4권으로 나뉘어 있다. 제1권에는 옥구의 전반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지세, 강계, 군의 건치 연혁, 각 면의 연혁, 각 마을의 연혁으로 시작하여, 군산의 연혁과 관련된 각 폐현[문창 폐현, 회미 폐현, 임피 폐현]의 연혁 그리고 관원, 성씨, 토성향리, 풍속, 형승, 기상, 산천, 도서, 제언[보 포함], 토지, 호수[인구 포함], 군청[위치 및 군 면적 포함], 행정구획, 토산, 성곽, 관방, 봉수, 관우[공해 포함], 누대, 창고, 교량, 불우, 단구, 향교, 학교, 시장, 토공[수리 포함],역원, 명소고적, 옥산팔경, 제영, 관안서[입규 포함], 군선생안[임피 포함], 관내이정표 등이 서술되어 있다.

제2권은 군산의 인물과 관련된 부분으로 유림, 유현, 유일, 상신, 절의, 충훈, 정려효자[미몽 포함], 정려효열부[미몽 포함], 사환, 수집, 문과, 생진, 학행, 유행, 문원, 필원, 사생, 자선, 총묘 등이 나타난다. 한편 제3권은 군산의 교육 및 문화 시설에 관련된 기록으로써 향교현판문[당실제옥산명륜당중수기, 헌관제중수기, 신문중수기, 흥학당중건기, 대성전동서협장원중수기, 대성전중수기, 대성전수보장원수리기, 대성정전사제수리기, 향교외산문중수기, 전사제수리기, 헌관제중건기, 삼현사중수기, 향교장원수리기 등], 당실제사서기[성황단 및 여단중수기, 향교별고창설기, 교당답종조판재권경기, 석전제제복중창기 등], 각성씨제각기[강씨영모제기, 김씨봉사제서, 선산김씨영모제서, 유경제기, 흡례제기, 첨추제기 등], 선정비[읍성생선정비문, 부인자선]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연이어 제4권에서는 기문[효자문공정려기, 원씨정려기, 유모암기, 제문진사강유인효행록후, 문씨효열려기, 이씨효열정려기, 평담김공유장 등], 행장[우봉신공행장, 신암문공행장, 통정대부지완문공행장, 운암김공행장, 진안현감신공행장, 유인강씨행록, 성균관장의강성대상소절요 등], 권학문 비명[문충공문영공양고성생유허비명, 열부유인제주고씨유허비, 담양전공비각기, 영속각기, 효열각비, 효자문공비각문병명, 영첨각비, 김공비각문 등], 묘갈명[옥현김공묘갈명, 지완문공묘갈명, 시일제문공묘갈명, 회암강공묘갈명, 고당김공묘표, 가선대부고공묘갈명 등], 상량문[한림동연의원 상량문, 동화정 상량문, 영송각 상향문, 영첨각 상량문, 삼효각 상량문], 시율[제한림동휴옹장상[김구], 한림동감고[김집], 한림원[최부], 제시헌정사벽상[김기찬], 기산서길[문기로], 농제원운[전승용], 발문 등의 내용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에 있는 옥구 향교에서 전통 시기 읍지의 형식에 따라 편찬한 옥구 관련 군지이다. 종래 옥구는 비록 옥구현으로써 존재하였음에도 임피현에 소속되는 등 위상이 미약하였다. 그러나 1895년 옥구군으로 출발하면서 1914년 일제가 실시한 군현 대통폐합 시에는 오히려 임피현까지 편입하여 오늘날 군산시를 이루는 대부분의 지역을 관할하는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로부터 10년 후인 1924년에 옥구 향교에서 『옥구군지』를 간행하였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옥구군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는 홍보 효과와도 어느 정도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시기 이래 읍지나 군지를 편찬하는 목적은 군현 단위의 행정 기능이 오래 축적됨으로써 군현이 단순히 행정적 단위체에서 벗어나 경제, 사회, 문화적 공동체이자 조직과 질서를 지닌 생활권으로서 독자성과 기능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읍지나 군지에 반영된 군현 단위의 지역 인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고장에 대한 애착심과 향토애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지역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기록으로 표출되는 『옥구군지』의 편찬은 당시 새롭게 출발하는 옥구군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제대로 알기’와 관련되고, 외부적으로는 ‘제대로 알리기’를 통한 옥구의 문화와 역사를 찾아내고 가꾸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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