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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431
한자 馬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삼한의 국가

[정의]

군산 지역을 포함했던 삼한 시대의 정치 연맹체.

[개설]

삼한이란 삼국 시대 이전 한반도에 존재하던 마한(馬韓)[54개국], 진한(辰韓)[12개국], 변한(弁韓)[12개국]을 말한다. 삼한은 발달한 철기 문화를 가졌으나 연맹체라는 한계에 부딪혀 각 연맹체를 이끌어갈 맹주가 있었을 뿐 일원적인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소국의 등장과 그들 간의 분쟁으로 정치적·경제적·군사적인 복속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국들은 세력이 우세한 집단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결국, 서기 4세기 중반에 이르러 마한은 백제에, 진한은 신라에 의해 모두 통합되었다. 변한의 경우 서기 6세기 중반까지 가야 연맹체에 소국들이 잔존하였으나 소국들까지도 신라에 의해 정복당해 삼한은 소멸하고 말았다.

삼한은 혼인과 예절에 있어 남녀의 구별이 있었으며 장례에는 소와 말을 순장(殉葬)하는 풍속이 있었다. 또한 법과 형벌은 일반적으로 엄하였다. 이 외에도 마한은 토착 농경 사회로서 토지가 비옥하여 벼농사를 비롯한 오곡을 재배했고, 양잠을 하여 면포를 직조했다고 한다. 진한과 변한은 철 생산과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역사·고고학적 흔적과 군산]

군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는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기 이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이다. 한반도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7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생활을 하였으며, 식량이 풍부한 곳을 찾아 옮겨 다니면서 주로 동굴이나 강가에서 살았다. 구석기 시대는 인류의 진화 과정과 도구의 발달 정도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된다.

군산 내흥동 유적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군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중기~후기 구석기 시대로 추정된다. 군산역이 들어선 군산 내흥동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층과 유기물 퇴적층이 확인되었다. 우리나라 중기~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퇴적층이 확인되었고,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그 결과 군산에는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는 결과와 함께 당시의 자연환경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고고학 자료도 제공해 주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6,000년 무렵부터로 알려졌는데, 이 시기의 유적은 대체로 큰 하천변이나 해안가에서 주로 발견된다. 그런 점에서 금강의 관문인 군산은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어서, 이 시기에 사람들이 정착할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춘 셈이다. 이를 입증해 주듯, 고군산 군도(古群山群島)를 비롯한 가도, 내초도, 노래섬, 비응도, 오식도 등의 도서 지역에서 모두 20여 개의 패총이 발견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농경 생활은 최소 기원전 1,000년을 전후한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었고, 기원전 700년 무렵에는 비로소 정착 농경 단계로 들어선다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군산 지역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성산면 도암리 주거지를 비롯하여 지석묘, 패총, 그리고 유물 산포지 등이 있다. 이들 유적은 장계산(長溪山)[110m]부터 영병산(領兵山)[120m]까지 뻗은 능선과 오성산(五聖山)[227m] 주변, 그리고 언덕이 발달한 개정면대야면 일대에 밀집된 분포상을 보인다.

[마한 연맹체의 등장]

한국 고대사에서 어느 특정 지방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마한 시대의 군산을 살펴보려면, 우선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의 기록부터 보아야 할 것 같다.

이에 따르면 서기전 3세기경부터 한반도 남부 지방에는 한 두 개씩의 정치체(政治體)들이 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엔 78개의 작은 정치체(政治體)들이 세워질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 가운데 마한(馬韓)에는 54개의 작은 정치체들이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오늘날의 경기도, 충청도 및 전라도 일대를 아우르는 지역에 산재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삼국지(三國志)』에 기록된 마한 54개국이 단일 정치체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각각 독립적인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여러 읍락(邑落)들이 결속하여 하나의 소국(小國)으로 발전해가고, 이런 소국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대국(大國)으로 발달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소국 상태에서 소멸되어 버리기도 하였다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소 정치체들의 형성과 발전 과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현재 이런 정치체들의 규모에 대해서는 작은 것은 대략 오늘날의 지방 행정 단위인 면(面)이 3개~4개 정도 합해진 규모이고, 큰 것은 1개 군 단위의 크기로 이해하고 있다.

또 인구 면에서는 대국은 1만 여 가(家), 소국은 수천 여 가(家)라고 기록하였는데, 이 시기 대국이 백제국(伯濟國)과 목지국(目支國)이었다고 한다면, 이들 두 국가는 1만여 가(家)의 국가이고, 나머지 50여 국은 1,600가(家) 정도의 소국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1가구 당 5인(人) 가족을 기준으로 할 경우, 대국은 5만 여 명, 소국은 7~8천여 명 정도로 추산해 볼 수 있다.

[마한과 군산]

마한 54개국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까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한강(漢江) 유역권, 금강(錦江) 유역권, 영산강(榮山江) 유역권, 섬진강(蟾津江) 유역권 등 큰 강 유역을 중심으로 각 정치체의 밀집도가 높았을 것으로 추정하며, 전북 지역에서는 금강 유역과 동진강·만경강의 인접 지역에서 여러 정치체들이 존재하였을 가능성만 짐작할 뿐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음상사(音相似)에 따른 지명 비정(推定)을 통해 감해[익산], 만로[옥구], 벽비리[김제], 구사오단[김제 금구], 일리[부안 보안], 불미[정읍 정우], 지반[부안], 구소[정읍 고부], 첩로[정읍], 모로비리[고창], 신소도[고창 흥덕], 임소반국[옥구], 비리[옥구 회현] 등 10여 국이 전라북도 지역과 관련이 있는 작은 정치체로 파악된다. 이 견해대로라면, 『삼국지』「동이전」의 마한 54국 중의 만로국(萬盧國)[옥구]·임소반국(臨素半國)[옥구]·비리국(卑離國)[옥구 회현] 등의 소국이 이 지방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군산 지역은 이미 백제 건국 이전부터 마한 연맹체의 일원으로 활약하였음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만로국 등이 어떠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성장·발전하고 있었는지는 관련 기록이 전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이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토기편이 수습된 20여 개소의 패총과 40여개소의 유물 산포지, 조촌동의 주구움무덤[周溝土壙墓], 대야면 산월리 고분군 등이 있다. 이렇듯 군산은 천혜의 자연 환경과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 이전까지 인근 지역에 비해 선진 지역으로 발전하였을 개연성을 높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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