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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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群山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종수 |
제정 시기/일시 | 1624년 - 고군산진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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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95년 - 고군산진 폐지 |
개정 시기/일시 | 1675년 - 고군산진 종 9품 별장진에서 종 3품 첨사진으로 승격 |
개정 시기/일시 | 1799년 - 고군산진 독진으로 승격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09년 - 고군산 건물 매각 |
관할 지역 | 고군산진 -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336번지 주변 |
[정의]
조선 후기 군산도[현재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에 설치한 수군진.
[개설]
조선 후기 1624년(인조 2)에 군산 지역의 해상 방어를 위해 군산도에 설치한 수군진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서남해안 지역에는 왜구뿐만 아니라 밀무역·불법 어로·약탈을 일삼는 중국의 황당선(荒唐船)이 자주 출몰하여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특히 군산에서는 군산포 만호가 해적에게 피살되는 불상사까지 발생하였다. 광해군은 국가의 큰 치욕으로 여겼고, 조선 조정에서는 서남해안 지역 해방 업무를 국가 중요 정책 사안으로 인식하여 전라도 일대의 해상 방어 체계를 정비하였다. 17세기 초반부터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수군 진 6곳을 증설하였다.
조선 후기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호남의 조운(漕運)은 영광의 법성창과 군산의 군산창, 익산의 성당창 등 3조창에서 관할하였다. 법성창은 해당 지역의 법성포 만호가 담당하였으나 군산창과 성당창은 군산진 만호가 관리하였다. 이에 군산진은 호남 최대의 조세곡 운반을 관할하는 관청이 되었다.
이처럼 조선 후기에 군산 지역의 군사적, 경제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군산진 하나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즉 군산진은 조운만 전담하게 하고, 군산도에 수군 진을 하나 더 설치하여 해방(海防)을 전담하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지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624년(인조 2) 군산도에 별장(別將)이 파견되었다.
[관련 기록]
『호남 진지(湖南鎭誌)』 고군산진 조를 보면 고군산진에 관한 자세한 사항이 실려 있다.
[내용]
군사적 중요성에 비해 고군산진이 설치된 초기에는 규모 및 전력[방패선 1척만 배치됨.]이 미약하였다. 이에 1629년(인조 7) 전라 감사 권태일은 고군산의 수군 진을 확대·강화할 것을 주청하는 계를 올린다.
전라 감사 권태일의 건의는 바로 수용되지는 않았으나 병자호란 직후 1637년(인조 15)에 전함을 방패선(防牌船)에서 대형 군함인 전선(戰船)[판옥선]으로 바꾸고, 1638년(인조 16) 2월에는 새로 마련한 전선의 사부(射夫)·포수(砲手)·격군(格軍)[櫓軍, 노 젓는 군인]을 육지의 속오군(束伍軍)으로 채워주었다.
이후 고군산진은 요해처라는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기존의 별장이 담당하던 것을 1675(숙종 1)에 종 3품 수군 첨사가 관할하는 수군 진으로 승격시켰다[군산진은 아직까지 만호가 담당함]. 이때부터 군산진은 조운 업무를 전담하고, 고군산진은 군산 해역 일대의 해방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고군산진은 전라 우수영에 속해 있는 수군진임으로 수조(水操)라 불리는 합동 군사 훈련을 받으러 우수영이 있는 해남으로 가야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좌초 및 익사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1780년(정조 4) 조정에서는 고군산진 첨사가 위도, 법성포, 영광, 군산, 검모포 등 5읍진의 수군들을 관할하고 훈련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업무의 중요성으로 말미암아, 군산진[2년간 조운 업무를 무사히 마치면 종 2품 방어사로 특진시킴]과 고군산진을 관장하는 첨사에게 많은 특전과 혜택을 주었다.
1799년(정조 23)에는 전라 우수영의 명령을 받지 않는 독진(獨鎭)으로 승격되었다[영광을 비롯한 전라북도 전 지역의 수군을 관할하게 됨]. 아울러 정부에서는 인근 군현 수령이 고군산진 첨사의 지휘를 받도록 조치하였다.
19세기 이후부터 서해안 일대에 이양선이 자주 출몰하자 고군산진은 군사적으로 더욱 중요시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조선 전 수군 진영을 통틀어 가장 많은 군선을 보유하게 되었다.
1895년 일제 강압에 의해 고군산진 및 군산진이 폐진되었다. 총리 대신 김홍집, 내무 대신 박영효에 의해 고군산진은 해체되었고, 1909년 내각 총리 대신 이완용이 그나마 남아있던 고군산진 건물을 일반인에게 매각하면서 고군산진은 흔적만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