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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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群山婦人敎育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원기 |
[정의]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단체.
[개설]
3·1 운동 이후 여성 계몽 교육 운동론이 사회적 과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여성 계몽 교육 운동은 지방으로 확산되어 갔고, 아동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어 갔다. 이후 청년 단체와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계몽 활동과 유치원 설립 운동이 진행되었다. 이들 단체에서는 여성과 아동에 대한 교육 활동과 함께 민족 독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군산부인교육회도 위와 같은 상황에서 1925년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설립 이후 근대 교육 보급의 필요성과 한국인 아동들의 입학난을 해결하기 위해 유치원을 설립하여 교육 활동에 전념하였다. 동시에 여성들의 계몽과 교양 함양을 위해 토론회를 통해 계몽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1931년 식민 당국에서 군산부인교육회가 운영하던 군산 중앙 유치원의 활동에 제약을 가한 이후 활동이 위축되었다.
[설립 목적]
군산 지역 아동들의 교육 기회 확대와 여성들의 계몽을 선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군산부인교육회는 1925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직 구성은 회장·의장·서기·일반 회원으로 이루어졌다. 김은자(金恩子), 양복점(梁福點), 김금지(金今芝) 등이 군산부인교육회에서 활동을 하였다. 김금지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한 인물로 군산부인교육회에서 서기로 활동을 하며, 군산 여자 청년회에서도 여성 계몽을 위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사회를 통해 군산부인교육회 주요 현안 및 유치원 운영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였다.
설립과 동시에 군산부인교육회에서는 아동 교육을 위해 군산 중앙 유치원을 개원하고, 미우 구락부(米友俱樂部) 회관을 임대하여 운영하였다. 군산 중앙 유치원 설립 이전 군산 지역 유아 교육 기관으로는 1909년(융희 3) 4월 일본인 자본가 미야사키 케이타로[宮崎佳太郞]가 설립한 군산 유치원과 조선 기독교 장로회에서 1922년 4월 설립한 구암 유치원이 있었다. 군산 중앙 유치원을 포함한 모든 유치원은 사립으로 운영되었다. 입학생은 군산 유치원 같은 경우 100명 이상이 되었으나, 높은 수업료로 인해 한국인 아동들의 입학은 어려웠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군산 부인 교육회에서 1925년 군산 중앙 유치원을 설립하여 운영해 나갔던 것이다.
군산부인교육회에서 운영한 군산 중앙 유치원 입학 대상은 교육 기회를 얻기 어려운 무산자 계급의 아동들이었다. 입학 정원은 30명 이내였고, 수업 연한은 2년이었다. 교과 과정이나 교육 내용에 관해서는 현재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동아 일보』·『조선 일보』·『중외 일보』 군산 지국의 도움을 받아 학예회와 음악회를 개최한 것과 졸업 후 보통 학교에 들어간 사실에 비추어 보면 보통 학교 입학 전 필요한 소양 교육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치원 운영을 위한 재정은 군산부인교육회 단독으로 부담할 수 없어, 지역 단체의 기부금과 유지들의 연극 활동, 사진전, 영화 상영 등을 통해 얻어진 수익의 일부를 기부 받아 운영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20년대 군산 중앙 유치원은 전라북도 지역 최고의 유치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31년 유치원 위치가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군산 중앙 유치원은 폐원하게 되었다. 군산 중앙 유치원이 폐원된 이후 군산 부인 교육회에서는 재차 운영을 위해 약행상(藥行商)을 하며 운영비 마련에 노력을 하였으나 폐원은 막을 수 없었고 이후 군산부인교육회의 활동도 쇠퇴하게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군산부인교육회에서는 아동 교육에 관심을 갖고 그와 관련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25년 군산 중앙 유치원을 설립하여, 유치원 교육에서 소외받은 아동들을 교육하였다. 아동들은 군산 중앙 유치원을 통해 보통 학교 입학 전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 교육을 받았고, 배운 내용을 학예회와 음악회를 통해 표현하였다. 또한 유치원 운영비 마련을 위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1927년부터 편물 강습회(編物講習會)를 개최하였다.
아동 교육 이외에 여성 계몽과 관련된 활동도 펼쳐나갔다. 군산부인교육회 임원들이 중심이 되어 군산 지역 여성을 대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여, 일제 강점기 여성들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또한 여성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경성 견학단을 조직하여 후원하였다. 가사에 도움이 되는 양복 강습회를 개최하여 여성들의 지식 함양에도 노력하였다.
[의의와 평가]
군산부인교육회는 교육과 토론회를 통해 아동과 여성을 계몽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고, 일제의 정책으로 교육 기회가 제약된 이들을 대상으로 민족 교육을 보급하는데 기여를 하였다.